지질과학이 어렵다, 건조하고 지루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질과학은 매우 논리적이고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어렵고 지루한 것은 원리와 유래를 모르고 나열된 지식을 기계적으로 외우기 급급하기 떄문입니다. 지질 현상과 원리를 설명하면서 이에 얽힌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같이 소개한다면, 이러한 잘못된 인식이 한 순간에 날아갈 것입니다. 이에 여기에 지질과학 관련 일화를 모읍니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발견에서부터 한국의 지질학 발전 과정에서의 작은 일들까지 관련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그리고 현재 지질과학을 공부하면서 일어나는 즐겁고 다양한 뒷얘기들을 공유해 주세요.
James Hutton과 경사부정합
유재영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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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21 22:53
층서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중의 하나가 바로 17세기에 니콜라스 스테노 (Nicolas Steno)
가 제안한 "수평 퇴적의 법칙 (law of Original Horizontality)"이다. 이 법칙을 간단히
얘기하면, "퇴적물은 수평으로 퇴적된다"는 것이다. 삼각주나 사구와 같은 곳의 사층리처
럼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스테노가 주장한 법칙은 대부분의 경우 적용된다.
제임스 허튼 (James Hutton)은 1780년 스코트랜드 Siccar Point 해변에서 경사부정합을 관
찰하였다. 이 경사부정합면 주위의 퇴적층들을 살펴본 결과, 부정합면위의 퇴적층들은 스
테노의 법칙에 따라 수평으로 쌓였지만, 그 밑의 층들은 이 수평층에 큰 각도로 경사진
채 만나고 있었다. 허튼은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순서의 지질 작용을 추론하였다:
1. 밑의 층들은 원래 수중에서 수평으로 퇴적되었다.
2. 이렇게 쌓인 층들이 지구조 운동으로 말미암아 수면위로 융기하고 기울어 졌다.
3. 기울어진 층들은 침식에 의해 수평으로 깍였다.
4. 이렇게 침식 당한 지층은 다시 침강하여 물에 잠기게 되었다.
5. 기울어진 지층의 침식면위에 새로 일련의 수평층이 쌓였다.
6. 기울어진 층들 위에 수평층이 쌓인 복잡한 덩어리는 다시 융기하여 우리가 관찰할 수
있도록 드러나게 되었다.
허튼이 발견한 뜻 밖의 사실은 위와 같은 작용이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는 것이
다. 우리는 위 1과 5 사이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경사
부정합면 자체가 매우 오랜 시간 간격을 나타낸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허튼 시
대만해도 아직 사람들은 지구의 나이가 겨우 몇천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지
질학자들은 정확히 지구의 나이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허튼 덕택에 사람들이 믿고 있는
나이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후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절대 연령 측정 결과 허튼을 비롯한 지질학자들의 생각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제임스 허튼은 1726년 스코트랜드에서 태어난 지질학자로 그 시대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렸
던 아브라함 베르너 (Abraham Gottlob Werner)의 '수성론'을 종식시키고 '화성론'을 제창
하여 지질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허튼은 1797년에 타계하였는데, 바로 이 해
에 공교롭게도 또 다른 스코틀랜드 출신의 그 유명한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찰스 라이엘
(Charles Lyell; 1797-1875)이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