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간 알프레드 베게너

일화 모음

지질과학이 어렵다, 건조하고 지루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질과학은 매우 논리적이고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어렵고 지루한 것은 원리와 유래를 모르고 나열된 지식을 기계적으로 외우기 급급하기 떄문입니다. 지질 현상과 원리를 설명하면서 이에 얽힌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같이 소개한다면, 이러한 잘못된 인식이 한 순간에 날아갈 것입니다. 이에 여기에 지질과학 관련 일화를 모읍니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발견에서부터 한국의 지질학 발전 과정에서의 작은 일들까지 관련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그리고 현재 지질과학을 공부하면서 일어나는 즐겁고 다양한 뒷얘기들을 공유해 주세요. 

시대를 앞서간 알프레드 베게너

유재영 0 16,401 2000.09.02 01:13
알프레드 베게너(Alfred Wegener)는 대륙표이설(theory of continental drift)
를 발표하여 지질학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독일 학자이다. 그는 고아원장의
아들로서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베게너는 1905년에 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그 후 그는 대부분의 시
간을 기상학을 연구하는데 사용하였다.  그는 학위를 받은 그 다음 해에 극지
방 대기 순환을 연구하기 위해 그린란드로 떠나는 덴마크 탐사대에 합류하였
다.  그는 거기서 2년을 보냈는데, 그 후 그의 일생 동안 이와 같은 그린란드
탐사를 세 번 더 하였다. 

베게너는 세계일차대전이 발발하자 입대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당
하고 말았다. 부상 후의 긴 요양 기간 동안 그는 오랜 동안 관심을 가졌던 문
제, 즉 대륙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문제에 골몰하였다.  그 이전의 다
른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베게너는 남아메리카 동부 해안선과  아프리카의
서부 해안선이 나란히 놓으면 어쩌면 그렇게 잘 맞는지 매우 흥미 있어 했
다.  그는 혹시 이 두 대륙이 과거엔 붙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한 술 더 떠서 그는 현재 나뉘어져 있는 모든 대륙이 과거 한 때 모두 한 덩어
리로 있지 않았나 생각하였다.  이 대륙을 그는 그리스어로"온땅덩어리"란 뜻
의 "판게아(pangaea)"라고 불렀다.  베게너는 이 초대륙이 지금부터 약 2억년
전부터 갈라지기 시작하였다고 믿었다.

1915년 베게너는 "대륙과 대양의 기원"이라는 책을 저술해 그의 가설을 주장
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륙이 움직인다는 생각은 베게너가 처음
한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지도 제작자인 아브라함 오텔리우스
(Abraham Ortelius)는 이미 1596년에 대륙은 지진과 홍수로 인해 여러 개로
찢어졌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베게너의 주장은 보다 과학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하였다.  예를 들면, 그린란드 빙하 밑에 열대 식물의 화석이 존재한
다든지,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열대 지방에 빙하 지형이 존재한다는 점이
바로 이런 증거들이다.

불행하게도 베게너의 책은 매우 호된 비난을 받았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대
륙이나 대양은 지구상에 일정한 위치를 영원히 점한다고 생각하였다. 베게너
의 이론이 설명하지 못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엄청난 양의 무게를 갖는 대
륙을 그렇게 멀리 움직일 수 있는 힘의 근원이었다.  영국의 헤롤드 제프리
(Harold Jeffreys)는 고체 암석 같은 것은 대양 지각으로 끌면 산산히 부서질
것이라는 옳은 지적을 하였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게너는 그의 생을 다하는 날까지 자신의 이론
을 뒷받침할 새로운 증거들을 찾아다녔다. 일차대전이 끝나고 그는 함부르크
에서 정부를 위한 대기과학 연구를 하였다.  1924년, 그가 그렇게 열망하던
일 중 하나를 이루었는데, 그건 바로 오스트리아의 그라쯔 대학에 기상학 교
수로 부임한 일이었다.

1930년 9월, 베게너는 제트기류 연구에 도움이 되는 기상관측소 건설을 위해
그린란드로 마지막 탐험을 떠났다.  지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배게너는 기
상관측소에 있는 연구원들이 얼마나 절실히 보급품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았
기 때문에 거기에 갈 것을 주장했다.  5주후, 베게너는 무사히 관측소에 도착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길에 얼
어죽고 말았으며, 그의 시체는 그 다음해 여름에 발견되었다.

베게너가 죽기 일년전, 영국의 지질학자 아더 홈즈(Arthur Holmes)는 맨틀의
대류가 대륙 이동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2차 대전 후, 지자기 연구 및
해저 확장설의 등장으로 베게너의 업적은 차츰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그러
나, 베게너의 학설이 완전히 인정된 것은 한참 후인 판구조론이 완전히 정립
된 1960년대 중반이나 되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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