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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푸는 신비의 세계] <5> 1992년 황령산 용암분출 소동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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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5 11:15
[부산일보: 2008. 01.14]
'고압전기 땅속 흘러 발생' 추정
'화산 활동 아니다' 밝혀졌지만 원인 아직 미스터리
분화구 같은 작은 구멍 다수
분출물 주변 10여m에 쏟아져
1992년 황령산 등산로에서 발견된 화산분출물인 '펠레의 눈물(왼쪽)'과 '펠레의 머리카락'
부산의 황령산 등산에 나섰던 K씨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황령산 송신탑 아래 등산로 주변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주변 나무들이 불타고 용융된 암석 조각들이 주변 바닥과 수목들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K씨로부터 연락을 받고 현장에 달려온 부경대 박맹언(환경지질과학과) 교수는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등산로 주변에 마치 분화구와 같은 작은 구멍이 다수 생겼다. 하와이 화산의 여신인 '펠레'에서 유래된 화산 분출물인 '펠레의 눈물'과 '펠레의 머리카락'이 사방 10여 m에 이르는 주변 바닥과 수목에 비처럼 쏟아져 나뭇잎은 벌레가 먹은 것처럼 온통 구멍이 뚫려 있었다. 높이가 6~7m나 되는 나무 등에도 펠레의 머리카락이 거미줄처럼 매달려 있었다. 주변 암석의 온도를 재어보니 섭씨 50도에 이르렀다.
400만 대도시 한 복판에서 화산폭발이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한 박 교수는 증거물을 수집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부산시에 알렸다.
바로 지난 1992년 9월에 일어났던 '황령산 용암분출 소동'이었다. 당시 부산시 부시장과 내무국장 등은 현장으로 달려갔고 시장에게도 보고됐다. 부산시는 시민들의 불안과 혼란을 고려해 신속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하와이대 화산연구소장 마이클 가르시아 교수에게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가르시아 교수는 당일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날아왔다.
그러나 정밀조사 후 용암분출이 계속될 가능성이 없다는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암석의 온도가 점차 식고 있었고 지표 균열이나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지진도 없었다. 또 분출된 용암물질이 지표 근처의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멀쩡한 바위가 녹아 분출했을까. 여러 전문가들에게 탐문을 했다. 그런데 수수께끼의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뜻밖의 가능성으로 제기됐다.
한국전기연구원의 박승재(대전력평가1실) 팀장은 "'지락(地絡)'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박 팀장의 말이다. "황령산에는 송신탑이 있다. 그 당시 황령산 송신탑 근처에 지중 케이블이 깔려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지중 케이블의 절연 피복에 손상이 발생해 전기가 땅속으로 흘러가는 지락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럴 경우 용접 때처럼 불꽃이 생겨 암석을 녹이고 폭발 사고가 날 가능성도 있다." 그는 자세한 것은 현장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맹언 교수는 "비록 화산활동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 원인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며 "사람이 자주 다니는 등산로에 비슷한 사고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빨리 그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황령산은 7천만 년 전에는, 로마의 폼페이시를 파묻히게 만든 베수비오 화산처럼 엄청난 양의 화산재를 내뿜던 화산이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 화산활동이 완전히 끝났고 곳곳에 구상반려암, 화강암, 안산암 등 용암이 만든 암석의 흔적만 남아 있다. 임원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