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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을 세계공원으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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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5 15:36
[한겨레21 : 2008-01-04 ]
[한겨레] 세계시민들이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공간…한국 제2기지의 목적이 영토확장이어야 하나
▣ 최예용 남극보호연합 동아시아 담당관·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
1989년 3월 알래스카를 지나던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 소속 엑손발데즈 유조선이 좌초했다. 무려 3만7천t의 기름을 청정해역에 쏟아냈다. 바닷새들이 최소 25만 마리, 해달이 최소 2800마리가 희생됐다. 해안선 1800km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선장의 음주로 인한 인재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유조선 또한 단일 선체로 건조돼 단숨에 엄청난 기름을 유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최악의 유조선 사고였다.
개발 허용하지 않는 ‘마드리드 프로토콜’
이때는 남극에서 석유와 석탄을 캐내고 여러 가지 광물자원을 개발하려는 많은 나라의 움직임이 커지던 때였다. 엑손발데즈 유조선 참사는 이러한 남극 개발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극에서 엑손발데즈 사고와 같은 유조선 사고가 난다면, 남극 생태계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문제 제기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1990년대 초반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열린 남극조약당사국총회는 남극에서 어떤 광물자원 개발도 허용하지 않고 환경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남극환경보호의정서’를 채택한다. ‘마드리드 프로토콜’이라고 불리는 이 협약은 오존층 파괴 물질의 국제적 감축을 의무화한 ‘몬트리올 의정서’와 함께 가장 성공적인 국제환경 협약으로 꼽힌다. 역사상 최악의 유조선 사고가 남극 보호에 한 몫(?)을 한 셈이다. 남극환경보호의정서는 ‘세계공원’ 남극대륙을 어떠한 개발로부터도 지켜낼 수 있는 초유의 국제적인 환경보호 규약이 되었다.
사방팔방으로 돌아가는 지구의가 있다. 우리가 아는 지구의들은 북반구가 잘 보이도록 북극이 위로 오고 남북극이 고정된 채 자전 방향인 좌우로만 돌아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가 갖고 있는 이 지구의는 자전축이 고정되지 않아 아무렇게나 막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볼 기회가 없는 남반구를 살펴볼 수 있다. 바닥에 있는 순백의 남극대륙을 위로 오게 할 수도 있는데, 다른 대륙과 비교해볼 때 남극대륙이 매우 큰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자’는 말이 있다. 남극대륙과 인근의 해양생태계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지구환경 위기의 바로미터다. 지구 반대쪽 백색 대륙 남극에서 일어나는 일이 곧 나의 생활과 연결돼 있다는 지구적 사고를 한다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 ‘지구온난화 위기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좌우로만 도는 지구의’가 은연중에 가져다준 제한된 시각을 남극 문제가 흔들어 깨운다.
지난 1995년 그린피스 국제본부의 초청으로 유럽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그린피스 사무실에 들렀을 때다. 한 여성 활동가가 자신이 맡은 분야가 해양환경 보호라면서 반갑게 악수를 청하더니, 대표적인 원양어업 국가인 한국의 남획으로 문제가 많은데 한국 단체들이 무슨 활동을 하느냐고 물었다. 순간 당황하여 문제는 알고 있지만 국내 문제가 산적해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답하니, 그가 아쉽다며 무슨 일이든 시작해달라고 주문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의 환경단체들은 아무런 해양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내륙국가인 오스트리아의 환경운동가들이 해양환경을 걱정하고 있어 적잖이 자극을 받았다.
그린피스는 1990년대 초 남극대륙에 직접 기지를 세우고 몇 년간 운영하면서 남극 보호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파했다. 당시 그린피스의 메시지는 ‘남극을 세계공원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각 나라는 중요한 생태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한다. 세계공원은 지구촌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국립공원이라는 의미다. 남극대륙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어느 나라의 주권도 통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매우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국제기지 개념 적극 수용해야
남극 보호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남극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남극 생태계에 큰 부담을 준다. 관광 등 불요불급한 방문은 가능한 한 삼가야 한다. 남극을 인류 공동의 세계 생태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남극은 위기에 처한 지구촌 환경 문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제기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색다른 공간이다. 국가적 이해를 넘어 지구 시민으로서의 정체감을 느끼면서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배출했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등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거듭나려고 하는 나라다. 그런데 한국이 추진하는 제2기지 건설계획은 영토확장과 자원개발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인류 공동의 미래로 평가되는 남극에서 ‘대륙기지’라는 제2기지를 추진하면서 상업적 이해만을 앞세워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아선 곤란하다. 오히려 국제기지 개념을 적극 수용해 과학 연구와 지구촌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앞장서는 나라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도 지구적 문제 고민해야”
창립 30돌 맞은 남극보호연합 설립자 제임스 반스 대표
올해는 남극보호연합(ASOC) 창립 30돌이다. 남극보호연합은 1978년부터 남극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온 유일한 남극 국제환경 단체다. 이 단체의 설립자 제임스 반스(63) 대표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남극보호연합은 어떤 단체인가?
=그린피스와 지구의벗 그리고 세계야생생물기금(WWF)과 여러 나라의 풀뿌리 환경단체 등 40개국 250여 개 환경단체들이 가입한 국제 네트워크이다. 남극은 쉽게 가기 힘들지만 지구환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곳이다. 한두 단체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해 조직했다.
주된 역할은 무엇인가?
=남극조약, 남빙양생물자원보존협약(카밀라협약) 등 정부들이 당사국으로 참여하는 협약이 있는데, 이들 정부 입장을 친환경적으로 바꿔내는 것이다. 해당 국가에서 활동하는 회원단체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의 환경운동연합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프랑스의 쿠스토 선장이 남극보호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려달라.
=아, 그 얘기? 프랑스의 해양탐험가인 자크이브 쿠스토 선장은 프랑스에서 유명한 인사이다.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등 남극 인근 나라나 영국처럼 근처에 섬을 갖고 있는 나라는 주권 논쟁에 휘말려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우리 남극보호운동가들은 남극환경보호의정서를 발의하는 데 프랑스 정부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쿠스토 선장이 미테랑 대통령을 만나 설득했고, 이어 프랑스 정부는 남극환경보호의정서를 앞장서 발의하게 된다.
원래 직업이 변호사인데, 남극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1970년대 초반 미국 정부의 환경자문을 맡았다. 그때 정부가 남극에서 추진하는 여러 개발사업 정보를 알게 됐다. 정부 활동을 하면서 얻은 정보를 외부로 알리는 것은 금지사항이었지만,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환경단체에 알렸다. 이를 언론이 대서특필해 이슈가 됐다. 그 뒤 그린피스 등의 자문 변호사를 맡았고 상근활동가로 뛰게 됐다.
한국의 환경운동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국은 최근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기구 지도자를 배출했다. 지구촌 리더 국가로서의 위치를 갖게 된 거다. 한국의 환경운동도 지구적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다뤄야 한다. 남극조약이나 기후변화협약 등에서 한국이 더 적극적인 입장을 갖도록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