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과학자들]극지연구소 남극운석탐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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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과학자들]<1>극지연구소 남극운석탐사대

동아사이언스 0 10,039 2008.02.16 15:36
[동아일보 :  2008-02-15 ]
 
 
《올해는 유엔이 정한 지구의 해다. 인간은 지구를 정복한 듯 으스대지만 얼음으로 뒤덮인 남북극과 뜨거운 사막, 심해와 밀림 등 지구의 극한 지역은 여전히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인류의 미래와 진리를 밝히기 위해 지구의 극한 지역에 들어가 탐험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지구의 해를 맞아 극한에 도전하는 대한민국 과학자를 만나보자.》


지구의 끝에서 ‘검게 탄 우주의 신비’ 캔다


스노모빌을 타고 눈밭을 헤치던 이종익(45) 극지연구소 남극운석탐사대장의 눈에 주먹 두 개만 한 크기의 검은 돌이 번쩍 띄었다. 가까이 있던 동료도 그걸 봤는지 달려왔다. 새까맣게 탄 돌. 한눈에 봐도 운석이었다. 이 대장은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월 2일 가장 큰 3.7kg짜리 대형 운석을 남극에서 발견한 순간이었다.


○ 세종기지에서 남극대륙의 한복판으로


“남극 세종기지에 몇 번 다녀오면서 세계 수준으로 연구할 게 없을까 고민했어요. 전공이 지질학이어서 자연스레 운석이 떠올랐죠.”


지구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운석은 태양계 탄생의 신비를 담은 돌이다. 특히 남극에 떨어진 운석은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1990년대 후반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화성 운석도 남극에서 발견한 것이다. 운석을 찾으려면 남극 가장자리에 있는 세종기지에서 훨씬 대륙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길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추위는 물론 얼음이 깊게 갈라진 크레바스 등 위험이 잔뜩 도사리고 있었다.


“후배이자 우리나라의 유일한 운석 연구자였던 최변각 서울대 교수, 히말라야에 수도 없이 다녀온 산악 전문가인 유한규, 장남택 씨가 탐사대에 합류했어요. 연구소에서는 군 복무를 마친 박창근 연구원이 들어왔죠. 국내에서 암벽 등반 훈련도 세게 했어요.”


2006년 12월 1차 탐사를 떠났다.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극의 ‘패트리엇힐’ 기지로 갔다. 거기서 경비행기를 타고 운석이 있을 만한 산맥 기슭을 뒤졌다. 그러나 끝나는 날까지 단 한 개의 운석도 찾지 못했다.


“절망했어요. 맨손인 날 이해해 줄까, 이걸로 영영 끝나는 것이 아닌가 싶었죠.”


짐을 싸기 직전에 탐사대를 지원했던 남극탐사 지원회사(ALE)가 선물을 줬다. 남위 85도 티엘 산맥 밑에 있는, 과거 운석이 나왔던 장소를 알려주며 12시간 동안 무료로 비행기를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왕복 5시간을 빼면 조사할 시간은 7시간밖에 없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들은 5개의 운석을 찾았다. 처음 운석을 확인한 최 교수는 얼음밭에 풀썩 드러누웠다.


○ 한번 탐사에 몸무게 4kg 빠지기도


“지난해 12월에 떠난 2차 탐사 때는 솔직히 자신이 많았어요.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100개 이상, 심지어 500개까지 기대했죠. 그러나 갑작스러운 폭설이 우리를 가로막았어요.”


패트리엇힐 기지가 생긴 뒤 처음으로 비행기조차 뜨지 못했을 정도의 폭설. 탐사 지역은 60cm의 눈으로 덮였고, 운석도 사라졌다. 눈이 그치고 6명의 탐사대원이 며칠을 조사했지만 한 개밖에 찾지 못했다.


“그대로 돌아갈 순 없었어요. 산맥을 넘어 예정에 없던 뒤편으로 가기로 했어요. 지도에 나오지 않은 길이라 어떤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는지 몰랐지만 조심스럽게 전진했죠.”


남극에는 수시로 ‘블리자드’라 불리는 눈보라가 몰아친다. 태풍을 넘어서는 강한 바람에 세상을 집어삼키는 눈보라가 일면 꼼짝 않고 텐트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 특히 이 대장은 흰 구름이 설원에 깔리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이트아웃’이 일어났을 때를 회상하며 “내가 왜 동료들을 이곳에 데려왔을까”라는 후회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새 장소에 도착해 기지를 만든 다음 날인 12월 29일 드디어 대박이 터졌다. 탐사대원들은 서로 흩어져 운석을 찾다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빙고를 외친다. 그날 곳곳에서 ‘빙고’가 터졌다. 이틀 동안 12개의 운석을 발견했다. 새로운 장소로 옮겨 3.7kg짜리를 비롯해 3개를 더 찾았다. 모두 16개였다.


10일 한국에 돌아온 이 대장은 몸무게가 4kg이나 빠졌다. 눈 밑의 동상 흔적도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쉴 틈이 없다. 지난해 일본의 구사카베 박사의 기증으로 극지연구소에는 최고 수준의 운석 연구실이 마련됐다. 이곳에서 발견한 운석을 분류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12월엔 다시 남극으로 가야 한다.


“우리 탐사대 주제가가 뭔지 아세요? 조용필의 ‘미지의 세계’예요. 이제 미지의 세계에 막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곳에서 미래에 물려 줄 과학 유산을 찾아오겠습니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 외계 생명체 등 밝힐 소행성 조각… 일본은 1만6000개 보유▼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운석은 모두 22개다. 극지연구소 남극운석탐사대가 1, 2차 탐사를 통해 발견한 21개의 운석에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전남 고흥군 두원면에서 발견한 운석 1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운석을 발견한 나라는 일본이다. 1만6000여 개의 운석을 발견했다. 미국이 1만5000여 개, 중국이 8000여 개의 운석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숫자로는 이탈리아에 이어 5번째로 많다. 그러나 이종익 대장은 “1000개 이상으로 늘려야 5번째로 불릴 만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운석은 남극에서 80%, 나머지는 대부분 사막에서 발견됐다. 운석은 주로 소행성에서 떨어져 나왔다. 태양계의 기원 물질과 생성 시기, 외계 행성의 성질, 외계 생명체의 가능성, 지구 물의 기원 등 우주의 신비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남극에서는 운석이 빙하와 함께 이동하면서 한곳에 모이는 경우가 생긴다. 특히 산맥 밑에 많이 쌓인다. 남극에서 산 위로부터 부는 강한 바람에 눈이 파이며 얼음이 드러나 푸르게 보이는 ‘블루 아이스’라는 지역이 생기는데, 이곳에서 운석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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