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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 아폴로계획이 가져온 첨단분석 장비
이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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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8 11:32
[디지털타임스: 2007-12-28]
이기욱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연구원
달 탐사의 시초는 지난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과 소련으로 나뉜 냉전시대에서 소련 무인탐사위성인 루나 2호가 33.5시간의 비행 끝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도착한 것이다. 루나 프로젝트는 당시 미국에 비해 소련이 달 탐사 등 우주분야에서 한 발 앞서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결과라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받았다. 이후 소련의 달탐사 계획은 1970년대까지 미국과 양대산맥을 이뤄가며 지속됐다.미국 역시 이에 질세라 `인류를 달 위로, 그리고 지구로의 안전한 귀환까지' 라는 1961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의회 연설로 시작된 아폴로 계획은 전쟁과 무관한 연구개발 과제 중에 역사상 최대 규모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거대 프로젝트에는 40만명이 참가하였으며 당시로 볼 때 천문학적인 예산인 240억 달러가 소요되었다. 지금의 장년층은 1969년 미국 동부 일광시간 7월 20일 오후 10시 56분에 닐 암스트롱이 이글호에서 먼지가 덮인 달 표면에 발을 내디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아폴로 11호 이후 인류는 총 여섯 번에 걸쳐 달에 착륙하여 380㎏에 달하는 월석을 지구로 들고 왔다. 국내에서도 서울대학교 이상만 교수에 의해 아폴로 11호와 12호에서 채취한 시료에 대한 광물학적인 특징이 연구된 바 있지만, 필연적으로 월석의 수집은 분석지구화학 분야의 발전을 가져왔는데 그 대표적인 성과가 바로 표면분석 거대장비의 탄생이다.
이전에는 광물이나 암석 시료 전체를 분말로 만든 뒤 강산으로 녹여 화학조성과 동위원소비를 측정하곤 하였다. 그러나 수 십조원의 예산으로 가까스로 지구에 들고 온 소중한 아폴로 월석을 이런 식으로 다 소진할 수는 없는 법, 이에 따라 지구과학자들은 시료를 녹이지 않고 표면을 보존한 상태로 분석할 수 있는 전자현미분석기와 광물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초고분해능 이차이온질량분석기의 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 굵기보다도 작은 넓이의 정확한 나이 측정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호주국립대학의 연구원들은 10여년의 노력 끝에 슈림프라는 기기를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하였고, 지난 1983년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네이처지에 43억년의 연대측정 결과를 보고함으로써 전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이라는 점에서 과학계의 많은 관심을 모았고 과학자들은 서로서로 이 장비를 활용하기를 원했다.
현재까지 개발된 여러 가지 연대측정방법 중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이 장비는 현재 전 세계에 12대가 설치되어 운영 중이며 몇 달씩 기다려 순번을 받은 과학자들은 이틀이고 사흘이고 밤을 새어 가며 장비를 사용한 연구에 몰두한다.
재미있는 일화의 하나로, 장비 사용자들이 밤새 분석을 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장비 주요 개발자인 윌리암스 박사 자택으로 전화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그가 없을 때 고전문학 비평가인 부인이 전화를 받고는 문제점 대처방법을 들은 풍월로 해결방법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30여년간 장비를 개발하고 관리해 온 윌리암스 박사이기에 본인 뿐 아니라 그 가족도 전문가가 되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슈림프라는 장비도 이제 올해 중순이면 국내에서는 최초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오창 캠퍼스에 최신식 기종이 설치될 것이다. 이 장비는 한반도 지질구조의 기초가 되는 연대측정에 주로 이용될 예정으로 지각구조 및 지진연구, 핵물질 동위원소 분석 등의 분야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이 장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국내외의 여러 연구자들이 오창 캠퍼스의 슈림프연구동을 방문하여 밤낮으로 실험실을 환하게 밝힐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어우러져 첨단분석장비가 지구과학을 비롯한 기초과학을 보름달처럼 환히 비추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