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전동혁 과학칼럼니스트] 세계 최초 맨틀까지 뚫는 시추선, 지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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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전동혁 과학칼럼니스트] 세계 최초 맨틀까지 뚫는 시추선, 지큐호

전동혁 0 11,815 2007.11.13 11:00
[한겨레: 2007년 11월 12일]

 인류가 도달한 최고 높이는? 그 높이는 1977년 지구를 떠난 보이저1호가 계속 갱신하고 있는 현재 약 160억km 높이(?)다. 그럼 반대로 인류가 도달한 최고 깊이는? 심해 잠수함을 타고 내려간 마리아나 해구의 10km 정도다. 지면을 뚫고 들어간 최고 기록도 10km 정도밖에 안 된다. 특히 지구의 가장 겉껍질인 지각을 뚫고 맨틀까지 도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최근 세계 최초로 맨틀까지 도달할 것으로 기대 되는 배가 있다. 바로 지난 9월 21일 일본 오사카 남동쪽 신구항을 떠나 난카이 해구로 향한 해양시추선 ‘지큐’호다. 이번 항해의 목적은 난카이 해구의 ‘메가스플레이’ 단층에 지진관측장비를 설치하는 것. 이곳은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해판이 만나는 곳으로 아시아 지역의 대부분 지진과 쓰나미의 진원지다.

메가스플레이 단층은 해저에서 3km 깊이에 있다. 이곳에 지진파 속도 계측기, 감마 검출기, 지층 구조 분석기를 설치한다. 각종 계측기를 달아 실시간으로 지진을 감시하게 되면 지진의 원인을 알 수 있고, 지진 발생 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총 3단계로 진행돼 2012년 마무리 되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지큐호는 맨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구의 속살을 파고드는 지큐호의 비밀을 벗겨보자.

맨틀까지 도달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이미 반세기 전에 시작됐다. 1957년에는 지각과 맨틀의 경계인 모호로비치치불연속면을 탐사하는 모홀계획이 있었고, 이후 심해저굴착계획, 심해저시추계획을 거쳐 2004년에 국제공동해양시추사업(IODP)이 만들어졌다. 해양에서 시추하는 이유는 해양지각(6km)이 대륙지각(평균 35km)보다 훨씬 얇기 때문이다.

지큐호는 현재 IODP 소속으로 일본이 1000억원을 투자해 개발한 해양시추선이다. 여기서 ‘지큐’란 지구(地球)의 일본 발음이다. 길이 210m, 높이 130m, 총 배수량은 5만8000톤에 이른다. 쉽게 말해 축구장의 2배 길이의 30층 건물이 바다에 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해저 바닥에서 2~3km 깊이까지 시추할 수 있는 기존 시추선과 달리 지큐호는 7~10km 깊이까지 시추할 수 있다. 얇은 해양 지각의 두께가 6km 정도인 사실을 감안하면 지큐호는 세계 최초로 지각 아래에 있는 맨틀에 도달할 수 있는 셈이다.

지큐호가 맨틀까지 뚫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바로 ‘라이저시스템’(riser system)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라이저시스템은 석유시추선이 사용하던 것으로 시추할 때 발생하는 폭발사고로부터 시추선을 보호하고, 시추선이 무너져 드릴이 매몰되지 않게 막는 장비다.
라이저시스템 동영상 보러가기 (http://www.jamstec.go.jp/chikyu/eng/Science/drilling.html)

시추할 때 지각에 가스층이 있으면 가스가 시추선까지 올라와 배 전체가 폭발할 위험이 있다. 라이저시스템의 첫 번째 기술은 시추공의 입구를 막으면서 드릴은 전용 파이프를 통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는 ‘폭발방지장치’(BOP)다. BOP가 있으면 가스가 시추공 입구에서 차단돼 시추공 안에서만 폭발이 일어난다. 비록 시추공이 붕괴하고 시추장비도 못쓰게 되지만 인명 피해는 없는 셈이다.

라이저시스템의 두 번째 기술은 진흙이다. 진흙은 배와 시추공을 순환하며 불순물을 제거하고, 시추공의 압력을 높여 붕괴를 막는다. 드릴이 암석을 뚫을 때 암석 파편이 생기는데, 깊이 시추할수록 파편이 많이 쌓여 드릴의 회전을 방해한다. 하지만 드릴 안쪽에 있는 관을 통해 시추공의 가장 밑바닥에 진흙을 주입하면 진흙에 밀려 파편이 위로 떠오른다. 지큐호는 진흙을 회수해 파편을 걸러내고 깨끗해진 진흙을 다시 드릴에 주입해 순환시킨다.

또 진흙이 시추공을 가득 채우면 시추공의 압력이 높아져 잘 붕괴되지 않는다. 진흙 없이 땅을 파내려가면 시추공은 빈 공간으로 남거나 바닷물이 채우는데, 땅에 비해 밀도가 낮기 때문에 쉽게 붕괴한다. 하지만 걸쭉한 진흙이 빈 공간을 채우면 구멍을 흙으로 메운 셈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여기서 쓰는 진흙은 일반 진흙이 아니다. 드릴이 손상되지 않도록 지름이 60μm(마이크로미터, 1μm=100만분의 1m)보다 작고 표면이 고와야 하며, 점성을 높이기 위해 화학물질을 첨가한 특수 진흙이다. 현재 이 특수 진흙을 만들 수 있는 전문가는 세계에서 몇 명 되지 않는다.

라이저시스템의 세 번째 기술은 시멘트다. 맨틀에 도달하기 위해 뚫어야 하는 깊이는 7km. 아무리 걸쭉한 진흙도 7km 땅속의 압력을 견디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지큐호는 맨틀에 도달하기 위해 5단계로 나눠 구멍을 뚫는다.

처음에는 지름이 91.44cm인 구멍을 수백m 깊이로 뚫고, 안에 파이프를 넣어 시멘트를 주입한다. 시멘트는 파이프 바깥과 시추공 사이에 채워져 시멘트관을 형성한다. 시멘트가 완전히 굳어 단단한 지지대가 되면 다음 단계로 좀더 작은 드릴로 지름이 66.04cm인 구멍을 1~1.5km까지 뚫는다. 그리고 다시 시멘트를 채워 외벽을 만든다. 이를 반복하면 시추공의 붕괴를 막으며 점점 깊이 들어갈 수 있다. 맨틀에 도달하는 마지막 다섯 번째 시추공의 지름은 21.39cm다.

지큐호가 사용하는 드릴은 다이아몬드 날이 달려있다. 가장 단단한 다아이몬드 날은 아무리 단단한 암반도 갈아낸다. 층의 성질에 따라 사용하는 드릴의 종류도 다르다. 또 지큐호는 맨틀까지 구멍을 뚫으면서 지질 조사도 한다. 무른 층은 빨대로 젤리를 찍듯 빈 파이프로 시료를 채취하지만 단단한 층은 속이 빈 드릴을 사용해서 채취한다.

비록 지큐호가 맨틀에 도달하는 시점은 2012년이지만, 지질학자들은 지큐호가 맨틀에 도달하면 지구에 대한 많은 가설이 증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판이 이동하는 원인이 맨틀의 대류가 아니라 해구에서 침강하는 해양지각 때문이라는 가설 ‘플룸구조론’도 밝힐 수 있다. 오랜 세월 논쟁을 벌인 지구조운동의 메커니즘에 마침표를 찍는 셈이다. 지큐호가 지구의 껍질을 뚫고 맨틀에 도달해 지구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길 기대해본다.
(글 : 전동혁 과학칼럼니스트)

과학향기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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