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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지구온난화의 불편한 진실
이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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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3 16:21
[뉴스메이커 2007-12-06]
스미스 박사팀이 2005년 12월 남극 웨델해에서 추적한 2개의 빙산 A-52와 W86, 빙산 A-52에서는 녹은 물이 폭포처럼 바다로 쏟아지고 있다. <사이언스>
지구온난화가 몰고 올 재앙을 경고할 때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대상으로 손꼽히는 동물이 바로 북극곰이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에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익사하는 애니메이션 장면이 나온다. 그린피스 같은 국제환경단체가 ‘지구를 살리자’고 시위를 벌이며 분장을 할 때 빼놓지 않는 캐릭터도 북극곰이다. 심지어 올해 초에는 지구온난화에 무관심하던 미국조차 북극곰을 멸종 위기 동물로 지정해 보호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최근 북극곰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다.
지난 11월 12일 영국 일간 ‘더 타임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북극곰의 개체 수가 오히려 늘어났다. 즉 북극곰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북극해 빙하가 지속적으로 감소했음에도 사람들의 관심과 보호를 받으며 1950년대 5000마리에서 현재 2만5000마리로 증가했다는 것. 환경단체들도 북극곰의 수가 50여 년간 5배나 늘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렇게 수가 늘자 먹이를 찾지 못한 북극곰이 민가로 내려오는 모습도 자주 목격된다고 한다. 러시아는 북극곰의 수가 증가하자 1973년 북극곰 보호협정을 체결한 이후 금지해온 북극곰 사냥을 곧 허용할 방침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빙산은 이산화탄소 킬러?
2002년 3월 유럽우주국(ESA)의 지구관측 위성 '엔비샛'이 남극반도의 라센B 빙붕이 붕괴하는 광경을 촬영한 사진. 빙붕이 무너져내리면서 생긴 수천개의 작은 빙산이 웨델해에 떠다니고 있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면서 빙산의 수가 늘고 있다. 특히 2002년 초 남극 북서쪽 웨델해 라센B 빙붕(3250㎢, 서울 면적의 5.4배)이 갈라지면서 서쪽 반도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 수천 개가 해안을 표류하고 있다. 크기도 수m에서 수백㎞까지 다양하다. 서남극의 빙상이 이런 식으로 붕괴되기만 해도 세계 해수면이 5m가량 상승한다는 예측도 있다.
지난 6월 22일자 온라인저널 ‘사이언스 익스프레스’에는 미국 몬테레이만 아쿠아리움 연구소 케니스 스미스 박사팀이 남극 웨델해 빙산 2개를 추적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 놀랍게도 바다를 표류하는 빙산 주변에는 다양한 해양생물이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빙산이 재앙의 그림자가 아니라 생명의 안식처란 말인가. 또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증가한 빙산은 오히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스미스 박사팀은 남극 웨델해 1만1000㎢를 찍은 위성사진에서 빙산 1000개가량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중에서 판자 모양의 빙산 2개를 선택했다. 하나는 길이 2㎞에 폭 0.5㎞의 빙산 W-86이고 다른 하나는 길이 21㎞에 폭 5㎞의 빙산 A-52이다. 연구팀은 남극조사선 ‘로렌스 굴드’를 타고 남극대륙 서쪽에 있는 웨델해로 들어갔다. 2005년 12월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던 두 빙산을 추적하며 그 주변 환경을 면밀하게 살펴봤다. 빙산에서 거대한 조각이 떨어지거나 빙산이 예고 없이 뒤집어질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빙산에 20m 이내로 가까이 접근했다.
실제 조사에는 비디오카메라를 장착한 무인잠수정(ROV)과 저인망(바닥 끌그물)을 이용했다. 빙산으로부터 반지름 9㎞ 이내에서 바닷물 표본을 수집해 해양생물의 종류와 분포를 조사한 것. 조사 결과, 빙산으로부터 3.7㎞ 근처까지는 식물플랑크톤, 크릴새우(남극새우), 어류, 바닷새가 풍성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회의적 환경주의자와 가이아이론
빙산 주변에서 어떻게 이런 해양생물이 살 수 있을까. 연구팀은 빙산에서 녹아내리는 물에 주목했다.
'북극의 제왕' 북극곰은 북극해 빙하가 줄었음에도 오히려 개체 수가 50년간 5배 증가했다고 영국 '더 타임스'가 최근 밝혔다.
빙산에는 남극대륙에 있던 육지 광물질(미네랄)이 많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빙산에서 철 같은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 주변 바다로 퍼져나갈 수 있다. 이는 마치 육지 광물질이 바다로 흘러가는 강어귀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연구팀에 따르면 녹은 얼음에서 흘러나온 미네랄은 식물 플랑크톤의 먹이가 된다. 크기가 20㎛(마이크로미터, 1㎛=10-6m) 이상인 식물 플랑크톤은 대부분 돌말(규조)류로 밝혀졌다. 돌말류는 빙산 근처 바다에서 깊이 8~60m에 서식했다.
연구팀은 빙산에 뚫린 바닷속 동굴도 탐험하고 비디오카메라로 수중생물도 촬영했다. 비디오에는 어린 남극빙어, 화살벌레, 빗해파리, 관해파리, 크릴새우가 잡혔다. 남극빙어는 아가미를 비롯한 몸체의 얇은 부분이 투명해 남극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특이한 물고기다.
바닷새는 빙산으로부터 0.9㎞ 이내에 많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락풀마갈매기(Cape Petrel)가 가장 많고 은풀마갈매기(Antarctic Fulmar), 윌슨바다제비(Wilson’s Storm Petrel) 순으로 많이 발견됐다. 풀마갈매기는 겉보기에 갈매기처럼 보이지만 갈매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사실 바다제비(petrel)의 친척이다. 바다제비의 이름은 성 베드로(St. Peter)처럼 바다 위를 걷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
플랑크톤에서 바닷새까지 둥지를 틀고 있는 빙산은 움직이는 바다생태계 보고(寶庫)인 셈이다. 빙산에 해양생물이 많이 산다는 사실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바로 빙산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빙산 근처에 사는 식물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하기 위해 물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바다에서는 이산화탄소가 줄어든 만큼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 또 크릴새우는 식물 플랑크톤을 먹어치운 뒤 탄소가 포함된 배설물을 내놓는다. 결국 배설물이 해저에 가라앉을 때 탄소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는 말이다.
스미스 박사팀은 빙산 2개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표류하는 빙산이 웨델해역의 약 40%가 해양생물의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웨델해역 빙산의 90%가 이번 조사대상보다 작아 앞으로 작은 빙산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빙산이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효과가 어느 정도로 밝혀질지 장래의 연구를 지켜볼 일이다.
덴마크 통계학자 비외른 롬보르가 자신의 저서 ‘회의적 환경주의자’에서 일부 환경론자가 환경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위기에 대한 경고도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지구온난화는 사실일 수 있지만 이 때문에 재난만 닥치는 것은 아니다.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이론’에서 말하듯 지구 전체가 생명체와 같아 지금은 온난화 몸살을 앓고 있지만 앞으로 언젠가 또 다른 평형상태로 돌아갈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영화 ‘투모로우’의 결론처럼 인류가 상당수 사라지더라도 모든 생명체가 멸종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지구온난화의 불편한 진실이 아닐까.
이충환<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