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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연구원 박용철씨 “남극을 보면 지구 미래가 보인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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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1 12:12
[경향신문: 2008-01-10]
“남극을 연구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곳이 자원의 보고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구환경이 어떻게 형성됐는가라는 비밀을 품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 지진학자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남극점 지진계 설치에 참여했던 국립기상연구소 박용철 지진연구원(36). 한달 전까지만 해도 남극에서 지진을 연구하다 온 탓인지 그는 10일 인터뷰에서 ‘남극의 신비’를 거푸 언급했다.
박연구원은 “남극은 2만년 전 지구상태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남극을 탐사하면 미래의 지구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며 “남극의 만년설을 꼭 밟아보고 싶다는 꿈은 이뤘지만, 남극 생활은 정말 경이롭고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12월 평균 체감온도가 약 영하 40도, 고도는 3000m에 이르다보니 산소가 희박하고, 초속 30m가 넘는 블리자드(강한 눈보라)가 몰아치면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었다”면서 “숙소에서 40m 정도 떨어져 있는 화장실에 새벽녘에 가려고 하면 모자와 두꺼운 파카, 그리고 선글라스까지 착용하고 가야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박연구원이 지난해 말 남극으로 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지진학 박사후 연구과정 중에 있다가 그 대학 지구물리팀의 연구대원 자격으로 합류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가 맡은 일은 남극점에 지진계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지진계를 설치해 놓고 남극점을 포함해 남극대륙 더 깊숙한 지역의 내부구조를 탐사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올해로 설치 20년을 맞은 세종기지보다 더 깊숙이 들어간 곳이 연구지점이었다.
하지만 그 작업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는 국립기상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찾는다는 공고를 보고 급거 귀국했다. 한국에서 발생한 지진과 북한에서의 핵실험 등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연구한 방법들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던 터라 망설이지 않았다. 지진 박사답게 지진 얘기가 나오자 주저없이 그 불가측성에서부터 얘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지진 예보란 언제 어디서 지진이 얼마나 큰 규모로 발생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인데, 세계 어떠한 나라도 불가능합니다.”
그는 미국에서도 지진 예보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다만 특정 지진이 일어난 뒤 그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피해와 다음 지진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지진 발생 후 얼마나 빨리 경보시스템을 작동할 수 있느냐를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지진 장비의 현대화가 조금 늦었지만 선배 지진학자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많은 연구가 수행됐다”며 “기상청이 많은 관측소를 보유하고 있어 국내도 지진을 연구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남극 세종기지에서 사고로 순직한 전재규 대원의 꿈이 지진전문가였는데 그가 못 이룬 꿈을 대신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