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공급가격 공개… 기름값 내려갈까
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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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1:33
2009.04.23 <조선일보>
정유사별 20~30원 차이 주유소별 마진도 드러나
"L당 50~60원 하락 가능" 담합해 가격 올릴 수도
국내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공급하는 유류의 도매가격이 오는 5월 1일부터 공개된다. 이렇게 되면 정유사별 공급가격을 직접 비교할 수 있고, 주유소별 판매 마진까지 알 수 있어 가격 인하에 효과가 있을 전망이다.
현재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가격은 업체마다 L(리터)당 20~30원 정도 차이가 난다. 업계 1위인 SK에너지가 가장 높고, 현대오일뱅크가 가장 낮다. 따라서 가격공개로 경쟁이 유발되면 최소한 20원 이상 도매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또 주유소들의 마진(정유사에서 공급받는 가격과 소비자 판매가격의 차이)도 모두 드러나므로, 주유소 판매가격도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정유사 공급가격보다 L당 300~400원 높게 파는 서울 일부 지역 주유소들은 휘발유 값 인하 압박을 강하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철용 책임연구원은 "L당 20~30원으로 추정되는 정유사들의 휘발유 판매 마진이 줄고 주유소 마진도 30~40원 정도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L당 50~60원 정도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유업계가 올 1분기에 대규모 흑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가격 인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유업계가 수출 및 판매 호조로 상당한 규모의 흑자가 날 전망인데 이는 당초 예상보다 정제마진이 높고, 휘발유 값의 거품을 뺄 여지가 많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계기로 정유사 및 주유소간 본격 가격경쟁이 시작되면 인하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제공하고 있는 각종 누적 포인트와 사은품, 세차 등 부가서비스의 거품을 빼면 L당 100원 이상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경부 성시헌 석유산업팀장은 "각종 부가서비스는 소비자의 선택과 무관하게 휘발유 값에 전가되고 있다"며 "이를 대폭 줄이고 순수한 가격경쟁 체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유업계는 휘발유 값 인하 효과가 많아 봐야 L당 10~20원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정유업체들의 마진이 L당 20원 이하인데 가격공개를 한다고 얼마나 떨어질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번 조치가 정유사들간의 암묵적 담합행위를 유발해 일부 휘발유 공급가격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강현 대한석유협회 회장은 "기름값이 오히려 상향 수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휘발유를 비싸게 공급하는 대형 정유사는 가격을 별로 낮추지 않는 반면, 값싸게 공급해온 정유사들이 오히려 가격을 높일 것이란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상향수렴론은 가격공개를 피하려는 핑계에 불과하지만, 암묵적 담합은 공식적으로 제재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등 휘발유 공급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업체들은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다. 소비자와 주유소들로부터 가격인하 요구가 있을 경우, 이를 피해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배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