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에너지 정책의 함정
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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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3:36
2009.05.12 <joins>
요즘 전 세계가 지구 온난화 관련 정책에 목숨을 거는 걸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제나 그린 에너지 보조금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렇다.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은 불분명한데 비해, 이들 정책이 몰고 올 해악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서 열린 기후변화 회의에 가보니 참석자 중엔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와 에너지 보조금, 관련 일자리 만들기 정책 등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업체 관계자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지구 온난화를 두고 과도한 히스테리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유럽은 이 분야에서 미국보다 몇 년 앞서 있다.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의무화한 교토의정서를 비준했다. 이들은 교토의정서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다. 여기에는 배출권 거래제와 높은 유류세, 풍력 등 재생 에너지 프로그램이 포함된다. 이들 정책은 EU 경제가 잘나갈 때 도입돼 상당한 비용 부담을 감수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금융 위기와 그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맞아 두 가지가 명확해졌다. 첫째, 세계 경제가 값비싼 새 에너지를 감당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둘째,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제 같은 에너지 배급 정책은 경제 활동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 정책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별로 기여하지 못하면서 세계 경제를 침체로 이끌 위험이 있다.
체코를 공산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데 참여했던 나로선 이런 위험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우리의 자부심이었던 중공업 부문이 시장 개방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그러자 체코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급격히 줄었다. 경기 침체 덕에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든 것이다. 체코와 동유럽의 경제가 재건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경제 성장과 에너지 사용 간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나 의무적 배출 감소, 재생에너지 보조금 제도 등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데 나는 동의하기 힘들다. 이들은 정부가 기업과 손잡고 ‘새로운 에너지 경제’를 창출하면 기업은 이익을 내고 모두들 잘살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착각이다.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는 에너지 가격을 올려야만 가능하다. 더 비싼 에너지를 사야 하는 소비자는 다른 상품에 쓸 돈을 아껴야 한다. 비싼 그린 에너지를 공급하는 개개 기업들은 잘나갈지 몰라도 경제에 미치는 전반적인 효과는 부정적일 것이다. 인류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지구 온난화를 늦추려면 전기료와 유가도 인상해야만 한다.
좀 더 큰 그림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린 에너지로 이윤을 내려면 에너지 배급제를 실시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자면 낮은, 심지어 마이너스 경제 성장률을 감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전보다 줄어든 파이 조각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모든 사람이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도, 현재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
정리=정재홍 기자 ⓒ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