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17 <동아닷컴>
우리 기술로 1억t 구리광맥 캔다
선진국 손길 안닿는 오지…30년째 생산 중단
中 제치고 지분 45% 확보
“이 주변이 전부 구리 광구입니다. 왼쪽으로 자연동, 오른쪽으로 산화동, 오른쪽 아래로 제2차 유화동이 있습니다. 제가 숨이 좀 차는데… 잠시만요.”
현장 설명을 하던 문영환 한국광물자원공사 볼리비아 현지법인장이 말을 멈추고 물을 마셨다. 현지 시간 4월 29일 오후.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약 100km 떨어진 코로코로 광산 일대. 김홍식 광물자원공사 에너지3팀장이 들고 있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단말기에는 해발 4091m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백두산(2744m)보다 1000m 이상 높은 지대다. 문 법인장은 부임한 지 20일이 넘었지만 이런 높은 고도에서는 말을 길게 하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아 보였다.
○ 중국 제치고 지분 협상 성공
이 지역의 광산은 지하 굴이 아니었다. 돌산의 얇은 토사층 아래로 푸르스름하거나 녹색 기운을 띠는 돌들이 보였다. 산화동이 포함된 공작석이나 휘동석이다. 코로코로 구리광산은 19세기 말 처음 개발될 때는 지하 갱도에서 순도가 높은 구리만을 채굴했으나, 광물자원공사는 최신 기술로 순도가 낮은 이곳 노천광도 개발할 계획이다. 코로코로 구리광산은 경제성 등의 문제로 30년 전부터 생산이 중단됐지만 순도가 낮은 구리광석에 대한 제련기술이 발달한 데다 구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른 판단이긴 하지만 이 지점에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올해 광상(鑛床)을 확인하고 내년에는 시추에 들어갈 겁니다.” 문 법인장이 바람에 날리는 지질 지도와 산 너머를 번갈아 가리키며 설명했다. 코로코로 구리 광산의 확인 매장량은 원광 기준 1570만 t(금속량 기준 50만∼80만 t)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는 2007년 한국이 한 해 사용한 구리 양(142만여 t)의 35∼55%에 해당하는 수치다. 볼리비아 정부는 매장량을 총 1억 t 이상으로 보고 있다.
현장사무소 현판식을 위해 이곳을 찾은 광물자원공사 일행들은 고산병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광물자원공사가 ‘틈새를 공략한다’는 전략을 세운 뒤 첫 수확물이 이곳이기 때문. 김신종 사장은 지난해 취임해 “자본과 기술이 앞서는 메이저 자원개발회사들과 경쟁하려면 그들이 가지 않는 험한 곳으로 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코로코로 구리광산은 자원시장의 ‘신흥 강자’ 중국이 먼저 협상을 하던 곳에 한국이 뒤늦게 끼어들어 따낸 것이라 더 뜻 깊었다.
○ ‘자원민족주의’에 막판 양보도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과 협상을 벌이던 알베르토 에차수 볼리비아 광업부 장관과 볼리비아 국영 광업전문기관인 코미볼의 미란다 렌돈 사장이 한국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은 2007년 12월 중국을 방문한 직후였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국에 들른 두 사람이 극진한 대접과 발전된 산업현장 모습에 감명을 받은 것.
그렇다고 코로코로 개발 계약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반대는 볼리비아 내부에서 불거졌다. 막판까지 지분을 50 대 50으로 갖는 것으로 얘기가 됐으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광물 자원의 소유권은 국가가 가져야 한다”며 한국 측에 지분 50%를 내줄 수 없다고 제동을 걸었다. 그는 2006년 취임 뒤 석유가스를 국유화하는 등 자원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보인 인물이었다. 볼리비아 의회도 한국과의 공동개발에 부정적이었다.
볼리비아는 한국이 돈은 그대로 내면서 지분은 45%만 가져가라고 요구했다. 억울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광물자원공사 관계자는 “다른 광물자원에 대해서도 향후 개발 협상을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며 “코로코로를 발판 삼아 볼리비아의 다른 자원 개발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로코로=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