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로 만드는 녹색 석유
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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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10:34
2009.07.27 <세계일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군함은 부족한 군사 자금을 보충하기 위해 금이 달라붙는 물질(이온교환 수지)을 개발해 커다란 배 뒤에 붙이고 다녔다. 이렇게 확보한 금의 양이 많지 않았지만, 어쨌든 독일군은 단순한 아이디어로 짭짤한 수익을 얻었다.
자원 대란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많지만, 이미 사람들은 기발한 상상력 하나로 다양한 자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소금물을 전기분해하면 양극(+)에선 염산, 음극(-)에선 양잿물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번엔 소금물에서 물을 증발시켜 완전히 제거하고, 남아 있는 소금만 녹여 전기분해하면 어떻게 될까? 양극에서 염소가스가 나오고, 음극에서 나트륨이 생성된다. 아이디어 하나로 흔한 소금물 하나에서 4가지 자원을 얻어내는 셈이다. 이런 물질은 모두 산업현장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일례로 금속 나트륨은 원자력발전소의 냉각 시스템에 쓰인다.
그러나 21세기 과학, 산업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선 이렇게 단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최근 새로운 시도의 하나로 융합기술이 대두되고 있다. 융합기술이란 IT, BT, NT 등 신기술을 상승적으로 결합해 가까운 미래에 인간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기술체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융합기술을 발굴하기 위한 아이디어는 확장하기에 따라서 무궁무진하게 퍼져나갈 수 있다.
간단한 예로, 원자력발전소에서 버려지는 방대한 열 에너지도 융합기술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이 에너지를 그대로 바다에 버리고 있는데, 이런 에너지를 체계적으로 모아 관리한다면 해양소재의 정제나 생산에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해양산업과 원자력산업의 융합인 셈이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버리는 열을 활용한다면 바다 농장(해양 바이오 플랜트)을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다. 적정한 열에너지와 무기염류만 보충되면 바다에 사는 해조류와 녹조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여름철 남해에서 수온이 올라가면 대규모 적조현상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를 이용하면 해조류나 녹조류를 배양하면서 수억 톤 규모의 해양발효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고, 여기서 수소가스나 비타민, 항생제 같은 의약품의 원료를 생산할 수도 있다.
이런 융합기술은 산업현장에서도 이미 활용되고 있다. 섬유나 종이, 도료 등에 쓰이는 ‘아크릴아마이드’란 물질은 과거엔 주로 석유를 원료로 만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 같은 화학공법에서 바이오공법으로 생산방법이 바뀌고 있다. 이미 이웃 일본에서도 바이오공법 중 하나인 효소공법만을 이용하여 아크릴아마이드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말하는 효소공법이란 미생물이 갖고 있는 효소를 이용해 아크릴아마이드를 만드는 기술이다.
이렇듯 바이오기술로 석유 화학제품을 대체 생산하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는데 이는 석유 화학제품의 원료인 석유가 고갈된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천연석유가 아닌 원료를 활용하여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비산유국가인 우리가 꼭 가야할 방향이기도 하다. 실제로 바닷물 속에서 건진 녹조류 등을 이용해 종이를 만들거나, 혹은 바이오에탄올 등을 만드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전통과학 기술이 있다. 김치나 요구르트를 만드는데 쓰이는 발효기술이다. 발효기술이란 미생물이 유기물(탄소를 가지고 있는 물질)을 완전히 분해시키지 못하고 다른 종류의 유기물(바이오매스)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말한다.
효모를 통해 탄수화물에서 에탄올을 만들어 내는 것을 그 예라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이 원리를 이용해 막걸리나 맥주를 만들어 왔다. 과거에는 에탄올이 석유화학제품이었는데, 발효기술을 산업적으로 활용하기 전에는 에탄올을 얻으려면 석유를 정제, 가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생물을 이용해 탄수화물로 알코올을 만드는 발효과정은 화학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알코올을 조금 더 가공하면 에틸렌가스, 벤젠 등 다양한 산업소재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1970년대 말부터 제안된 이 대체기술은 최근 유전공학과 결합돼 이제 알코올보다 훨씬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물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단계까지 와 있다.
이미 세계 화학 산업계는 화학제품의 원료를 석유 대신 바이오매스로 생산하기 위해 발효기술을 포함한 바이오산업과 융합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더 나아가 산업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미생물의 유전체 정보를 해독하고, 특정 산업소재를 생산하는 미생물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극한 환경에서 사는 미생물의 몸속에 있는 독특한 효소를 활용해 새로운 식품소재나 의약품을 효소공학 기술로 생산하고 있다.
융합기술이 과학기술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융복합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아이디어만 있다면 과학기술 간의 융합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용기와 자신감이다. 우리만이 시도해볼 수 있는 새로운 산업형태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고민할 때다. 이런 것이 진정한 녹색성장이 아닐까?
이대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