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무한도전 “얼음바다를 뚫어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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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0 11:50
[한겨레 2007년11월19일]
삼성중, 세계 첫 극지용 시추선·쇄빙유조선 건조북서항로 뱃길 열리면 화물선 수요도 급증 예상
“북극해를 제압하는 자가 세계를 제압한다.”
세계 최강인 국내 조선업계가 북극해를 ‘블루오션’(새로운 시장)으로 보고 새로운 선박 개발과 수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극해는 아직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자원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장 가까운 바닷길이다. 지구온난화로 두터운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면서 극지방 자원개발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북극해 전용 대형선박의 발주 규모는 앞으로 몇년 안에 수조원대에 이른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 극지용 선박 수주 박차= 국내 업체 중 북극해용 선박 개발에 가장 앞선 곳은 삼성중공업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10일 -40℃에서도 작업이 가능한 극지용 드릴쉽을 세계 최초로 완성해 발주처인 스웨덴 스테나사로 넘겼다. 드릴십은 수심이 깊은 해역이나 파도가 심한 해상에서 원유와 가스를 뽑아낼 수 있는 선박 형태의 시추설비다. 삼성중공업이 이번에 완공한 드릴쉽은 바다 위에서 에베레스트산(8848m)보다 더 깊은 해저 11㎞까지 드릴장비로 파내려 갈 수 있으며 높이 16m의 파도와 초속 41m의 강풍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어서 북극해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다.
삼성중공업은 또 세계 최초의 쇄빙유조선도 완성 직전에 있다. 다음달 완성될 7만t급 쇄빙유조선 3척은 지난 2005년 러시아에서 수주한 것으로 운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후속 발주가 잇따를 것으로 삼성중공업 쪽은 기대하고 있다. 원래 북극해를 지나려면 쇄빙선이 앞에서 얼음을 깨고 뒤에서 일반 유조선이 따라가야 한다. 쇄빙 유조선은 배 두척을 한척에 모아놓은 효과를 거둘 수 있어 원유 운송효율을 극대화할수 있다.
에스티엑스(STX)조선 또한 쇄빙선을 모델로 한 광고를 시작하며 극지용 선박 수주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기술은 이미 확보했으며 세계 각국의 선주들을 대상으로 쇄빙선박 수주를 위한 세일즈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또한 최근 현재 주력 생산종인 멤브레인형 액화천연가스(LNG)선이 극지방을 충분히 운행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극지 선박 시장에 뛰어들었다. 쇄빙선도 기술 도입이 되는 대로 수주를 받기 시작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은 아직 수주를 받을 계획은 없지만 시장성만 있으면 언제든지 건조에 뛰어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다고 밝혔다.
■ 왜 북극해인가=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북극의 석유 가채매장량은 전세계 원유의 30%에 가까운 약 1조 5천억배럴이다. 세계 석유소비량의 60년분에 가깝다. 천연가스도 48조㎥가 매장돼 있어 전세계 가스 매장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제2의 중동’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북극에서 유전개발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면 쇄빙유조선이나 극지용 드릴쉽의 발주가 이어질 것으로 조선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2015년까지 최소 38척 이상의 쇄빙유조선, 48척 이상의 쇄빙·내빙가스선이 발주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쇄빙기능이 있는 배들은 같은 크기의 일반배보다 3~4배 이상 더 비쌀 정도로 부가가치가 훨씬 높다. 삼성중공업의 7만t급 쇄빙유조선의 가격은 1억4300만 달러(약1300억원)로 31만t급 유조선과 비슷하다.
자원 뿐만 아니라, 북극 근처를 통과하는 북서항로 뱃길도 얼마 안가 열릴 조짐이어서 쇄빙·내빙 화물선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겁다. 이 항로를 통과하면 일본 도쿄에서 영국 런던으로 가는 거리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2만1천㎞, 파나마운하를 경유하는 2만3천㎞보다 훨씬 가까운 1만6천㎞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많이 녹아내리면서 전문가들은 2020년이면 이 노선으로 배가 다닐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형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