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재앙’ 뒤로… 세계는 탈원전서 U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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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재앙’ 뒤로… 세계는 탈원전서 U턴 중

[국민일보; 2013년 5월 21일]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아사히신문은 ‘프로메테우스의 덫’이란 제목의 연속기획을 통해 원자력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기획은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 세계에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가 영원한 고통의 상징으로 전락했던 것처럼 원전도 결국은 고통을 의미한다고 꾸준하게 강조했다.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앞에서 원전의 완벽한 통제를 자신하던 이들조차도 분명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의 경고에도 세계는 또다시 판도라가 건넨 상자를 끌어안고 있다. 언제 열릴지 모를 위험한 상자에는 쉽게 지필 수 있고 잘 타오르는 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와 원자력 발전은 인간과 공존하기 지극히 어려운 기술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전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2주년 심포지엄에서 강조한 말이다. 사고 수습을 지휘했던 간 전 총리는 “원전을 완전히 철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원자력 정책”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사고 당시를 제어불능 상태와 근소한 차이였다고 회고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도 존재했다고 경각심을 높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무르익던 ‘원전 르네상스’에 급제동을 걸었다. 일본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탈(脫)원전’ 선언이 이어졌다. 특히 재앙의 전초전을 경험한 일본의 ‘원전 제로(0)’ 의지는 단호해 보였다. 원전 사고 1년여 만에 54기에 이르렀던 일본 내 모든 원전의 가동이 중지됐다.

하지만 대안 없이 밀어붙인 탈원전 정책의 수명은 짧았다. 가중되던 전력난 속에 오이(大飯) 원전 3·4호기가 재가동됐고, 자민당은 집권 이후 원전 철폐를 단지 검토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현재 일본은 역설적이게도 세계 최대 원전 수출국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다시 원전 수출 드라이브 거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지난 중동 순방도 실제론 원전 수출을 위한 행보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는 수출하고 원전으로 국내용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전략을 추진하면서 일본의 계획과 맞아떨어졌다.

다음달로 예정된 아베 총리의 폴란드 방문도 그 목적은 역시 원전 세일즈에 있다. 아베는 동유럽의 ‘비제그라드 그룹’ 4개국(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정상들을 만나 원전 외교를 벌일 방침이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각각 2기의 원전을 2020년대부터 가동할 예정이고 체코는 3기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베트남과 터키, 인도 등을 상대로도 치열한 원전 수주전을 전개하고 있다.

원전 재앙의 당사국이 이럴 정도면 다른 나라들의 입장선회는 보다 일찌감치 예견된 결과였다.

한국도 여전히 계획 원전 건설을 ‘착실하게’ 추진 중이고, 아시아 등지의 신흥국가들은 원래부터 선진국 중심의 탈원전 논의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미국은 지난해 초 34년 만에 다시 원전 건설에 착수했고, 캐나다는 기존 중수로 원전의 경수로 전환을 통해 원전을 유지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러시아는 2030년까지 전체 전력생산에서 원전의 비중을 25∼30%까지 확대시킬 계획이다. 체르노빌의 끔찍한 기억이 남아 있는 우크라이나마저도 지난해 가동 원전 11기의 수명을 2030년까지 연장키로 결정했다. 영국은 향후 20년 내 노후 원전을 단계적 폐쇄하겠다던 방침에서 신규 원전 대체 정책으로 선회했다. 스웨덴도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신규 원전 건설 금지 정책을 백지화했다.

특히 프랑스는 원전 감축을 둘러싸고 큰 홍역을 치렀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75%에 육박한 원전 의존도를 2025년까지 50%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약속이행은 이미 물 건너간 분위기다. 프랑스 국내 여론도 양분된 상태다. 원전 전면폐지를 촉구하는 주장이 거센 만큼이나 원전 유지를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커졌다.

전체 원전 58기 중에 현재까지 2기의 폐쇄 명령만 내려졌을 뿐인데도 올랑드 정권은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피센하임 원전의 조기 폐쇄 방침을 놓고선 노동계까지 가세해 격렬하게 반발했다. 프랑스 원전은 본질적인 논의와는 별개로 산업 구조조정의 후폭풍에 마주친 모습이다. 지난해 8월 아르노 몽트부르 산업장관은 “핵에너지는 프랑스의 미래산업”이라며 정권의 방침과 엇나간 발언까지 내놨다.

값싼 전기의 유혹에 빠진 전 세계…獨逸만 獨也靑靑

전 세계가 후쿠시마의 현재진행형 재앙을 함께 목도했음에도 여전히 원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배경엔 ‘값싼 전기’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원전은 화석연료의 부담에서 벗어나 가장 저렴한 유지비로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발전방식이다. 1시간 동안 1킬로와트(KW)를 꾸준하게 공급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하는 데 석유는 250원, 천연가스는 155원, 석탄은 53원이 드는 반면 원전은 27원이 든다. 널뛰는 국제 유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에너지 안보와도 직결된다. 현실적인 이유로 에너지 자원의 빈부 차에 상관없이 세계 각국이 원전이란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껴안고 살아가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원전은 과연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일까. 세계 각국의 U턴에도 여전히 직진 중인 독일의 ‘고집’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일본과 달리 독일은 원전에 있어서도 과거사 문제에 대처할 때만큼 단호하다.

지난 2011년 5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원자력으로부터의 ‘단계적 탈출’을 선언했다. 이후 독일은 가능한 이른 시간 안에 재생에너지 시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각계 17인의 전문가로 구성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위원회의 권고대로 독일 정부는 2022년까지 원전을 완전 폐쇄한다는 정책을 확정했고, 노후 원전 8기를 즉각 폐쇄하는 조치를 취했다.

탈핵이 핵심인 독일의 ‘에너지 혁명(Energiewende)’은 실제론 이미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사회민주당 정부는 원자력기본법 개정을 통해 가동 중인 원전에 ‘평균수명 32년’을 일괄 적용했고, 이어 17개 원전을 2021년까지 단계적으로 완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축적된 노력의 결과, 독일에선 재생가능 에너지의 전력 생산량이 원전을 뛰어넘었다. 독일은 전력 수입국이 될 것이란 비관론을 뛰어넘어 오히려 현재 전력 수출국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스마트 그리드(차세대 송전망)’와 에너지 축적기술 개발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뤘다.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환경장관은 최근 “탈원전 과정에서 다른 나라들과 연계해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 정책을 펼칠 예정”이라며 재생에너지의 도입에 관심이 있는 국가들이 서로 협력하는 ‘재생에너지 클럽’ 형식의 국제연합에 대한 구상도 내놨다. 독일의 사례는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만 ‘판도라의 상자’를 폐기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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