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구조론의 신비
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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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4 09:51
2009.06.04 <joins>
큰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에는 ‘판구조론(板構造論)’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이는 지구 껍질이 몇 개의 거대한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이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치고 갈라지는 과정에서 지진과 화산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럼 판들은 왜 움직이는 것일까? 그것은 지구가 식는 과정에서 맨틀이 대류(순환)하기 때문이다. 초기 지구는 매우 뜨거웠다. 감자를 오븐에 넣고 구워 꺼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다 식은 줄 알고 한 입 물었는데 안이 식지 않아 놀란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감자처럼 지구도 표면부터 식기 시작했다. 표면과 내부의 온도차는 맨틀의 대류를 가져왔고, 표면이 굳어 생겨난 판들은 그 순환운동으로 인해 지금도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
그뿐 아니다. 맨틀이 올라오는 곳에서는 판과 판이 반대로 밀려 생기는 빈 공간에는 용암이 식어 굳으면서 새로운 지각이 생겨난다. 반대로 지각이 소멸되는 곳도 있는데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마치 블랙홀처럼 판이 맨틀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오랜 기간에 걸쳐 새로 만들어지고 없어지기도 하는 지구 표면은 인간의 생로병사와도 같다. 판의 움직임은 바다와 생명을 탄생시키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같은 사실들을 1960년대 후반에야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러한 결정적인 증거들이 깊은 바다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잠수함을 잡기 위해 발달한 수중음향탐사 덕분에 그 이후에야 바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판의 운동이 식는 과정에서 생긴 거라면 다른 행성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태양계에서 지구와 가장 비슷한 크기를 가진 행성이 금성이다. 행성의 크기는 이 행성이 대기와 바다를 지닐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왜냐하면 작은 행성은 중력도 작아 대기가 우주공간으로 다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금성에도 지구와 같은 판의 운동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금성이 태양에 가깝다 보니 표면의 온도가 높아 바다에 있어야 할 물이 수증기가 되어 금성을 덮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금성은 거대한 한증막과 같다. 그래서 두꺼운 구름층 때문에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임에도 그 표면이 안 보일 뿐이지 지구와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판구조론에 대한 오랜 수수께끼는 1989~1994년 미국의 무인탐사선 마젤란호가 레이더로 금성의 구름을 뚫고 표면을 관측함으로써 풀리는 듯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무리 자세히 봐도 지구에서와 같은 판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 지구와 거의 같은 조건에서 출발한 금성에는 판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까 하고 고민하던 과학자들은 금성에는 바다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한 가지 그럴듯한 설명은 지구의 경우 지각뿐 아니라 상당량의 물이 다시 지구 맨틀로 함께 들어가기 때문에 맨틀이 덜 끈적끈적해져 판의 원활한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물은 암석이 녹는 온도를 낮추는데 물이 수증기로 있는 금성에는 이러한 일이 생길 수 없다. 우리 지구가 대기와 바다를 지닐 수 있는 것은 우연히도 적당한 크기를 가진 동시에, 태양으로부터도 적당한 거리에 있어 바닷물이 다 증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게는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