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5 <더사이언스>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 관계자들은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비전으로 내세운 뒤 이 말이 정부 사업을 진행하려면 반드시 붙여야 하는 수식어처럼 변했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최근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 ‘녹색성장’이라는 검색어로 하루 동안 등록된 국내 뉴스는 하루 평균 100건 이상이다. 이달 4일에도 180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저탄소’ 라는 단어로 검색해도 100여건에 육박한다. 이만하면 전국이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구호로 뒤덮여 있다고 해석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하지만 ‘정부주도로 첨단기술 연구를 시작했다’는 발표나 기사를 찾아보기는 거의 어렵다. ‘A 기관과 B 기업이 업무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C 지자체에서 자전거 출퇴근을 독려하기로 했다’는 식의 정책 홍보성 기사가 대부분이다.
과학계에서는 벌써부터 “정부 내에 대한민국에 ‘녹색 붐’이 불고는 있지만 정책을 현실화 하는데 필요한 연구개발(R&D)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기존 개발정책의 포장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신규 연구 계획 감감 무소식
연구현장에서는 벌써부터 녹색 성장 정책에서 R&D는 후순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시책 변화에 따른 신규 연구개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위치한 한국화학연구원. 전문 연구기관인 만큼 이산화탄소 처리기술, 화합물 저공해 공정개발 등 산업분야 저탄소 기술 개발에 다양한 연구개발이 가능하지만 ‘저탄소 녹색성장”에 맞춰 새로 시작한 연구 사업은 한 건도 없다.
연구원 관계자는 “지난 해 정부가 정책이 발표할 때만 해도 모두가 새로운 연구 기회가 주어질 것을 기대했다”면서 “그러나 아직 연구개발 지시가 내려온 것도, 연구개발 아이디어를 제안하라는 권유도 받아본 적도 없다”고 했다.
국내 대표적 신재생에너지 연구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기본적으로 ‘신재생에너지’만 연구하는 기관이라 업무에 변화가 없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더 적극적인 기획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연구원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따라 자체적으로 사업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면서도 “정부가 주도하는 기획성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정부의 코드’에 맞춰 비교적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아직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지질연은 ‘이산화탄소 처리연구실’까지 만들며 연구 개발을 준비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연구는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사업비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질연 지구환경본부 관계자는 “공장에서 수집된 이산화탄소를 땅 속에 묻어 보관하는 지중저장기술 개발을 신청했으나 평가 결과 떨어졌다”면서 “산업화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해 하반기에 다시 신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는 부처별 R&D 사업이 본격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모든 정부부처는 기술개발이 필요할 경우 책임급 이상의 출연연 연구원이나 일정자격 이상의 기업, 또는 대학교수가 그 연구개발사업을 취득, 운용토록 하고 있다. 정부부처에서도 ‘저탄소녹색성장’에 따른 기획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니 연구개발 역시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따라서 연구현장의 변화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정부 출연연구기관 정책담당자는 “정부에서 명확한 연구기획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면서 “출연연에서도 흐름에 맞춰 독자적인 연구기획을 기획하기도 하지만, 이련 경우에는 정부의 명확한 청사진이 제시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 R&D 예산 대부분 기업 지원 쪽으로 돌려”
연구비는 어떻게 운용되고 있을까? 저탄소 녹색성장에 필수적인 신재생에너지 분야 연구비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가 전체 연구비 예산도 지난해보다 2조원 이상 늘어나13조원 까지 증액됐으며, 이 중 신재생에너지 분야 신규사업비로 1744억원이 배정됐다. 500억 이상 늘어난 수치여서 정부 측은 “신재생에너지 연구비용을 대폭 증액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계 현장의 정책 전문가 들은 “국가연구비 증액은 참여정부 이후로 계속되어 온 일이라 신재생에너지 연구비가 늘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코드에 맞추어 재 포장하고 있을 뿐” 이라고 지적했다.
전체 연구비는 증액되고 있지만, 기존부터 추진되던 사업이 대부분 포함되다 보니 새로운 연구기획이나 부처사업에 운용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한 출연연 정책 전문가는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 발표 이후 부처별로 추진업무를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며 특히 대부분의 신재생에너지 연구기관을 관리하고 있는 지식경제부의 추진계획이 조속히 나올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출연연 관계자는 “최근에는 신재생에너지 연구비용이 기업 위주로 지원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본격적인 연구개발 자원은 대학과 연구기관 위주로 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부차원에서도 신재생에너지 개발 로드맵을 개발하고 있다. 국무총리실에서는 지난 해 9월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을 발표했으며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은 ‘녹색성장 실현을 위한 R&D 이정표, 그린에너지 전략로드맵(안)’을 구상하고, 현재 공청회 등을 거쳐 수정 보완 중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정부부처에서도 최선의 방안을 연구, 개발해 추진하려고 노력 하고 있다”면서 “4월 공청회 등을 마치고 부처차원의 로드맵을 최종 수정, 확정해 6월 공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로드맵에 따르면 6월부터 관련 연구개발사업 추진이 시작될 전망이다.
그는 “이미 일부 과제는 로드맵에 따라 4월부터 공고가 나가기 시작했으며 사업자 선정 등을 거쳐 6월 이후부터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단기사업이라면 2012년경이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계획에 따르면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석탄가스화복합발전(IGCC), 이산화탄소포집시스템(CCS), 청정연료, 에너지저장, 전력 정보기술(IT), 발광다이오드(LED) 등 9개 분야에 대한 조기성장동력화 계획과 원자력, 소형열병합, 그린카, 초전도, 에너지절약형 건물, 히트펌프 등 6대 단계적 성장동력화 계획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도 민간기업 전문가 중심으로 기획 논의되면서 대학이나 연구기관보다는 기업 지원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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