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7 <조선일보>
울창한 숲보다 이산화탄소 더 많이 제거 습지에 개구리밥 키우면 에탄올용 전분 만들어
습지는 수질을 정화한다고 '생태계의 콩팥'이라고 하고, 다양한 희귀 생물들이 깃들어 산다고 '생태계의 백화점'으로도 불린다. 철새의 주요한 서식지이기도 해 '생태계의 정거장'이라고도 한다. 이제 습지가 또 다른 별명을 얻게 됐다.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를 붙잡는 '생태계의 공기정화기'이자 친환경 바이오에너지를 생산하는 '생태계의 녹색에너지공장'으로 습지를 탈바꿈시키는 연구가 국내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 전남 곡성군의 반구정 습지. 최근 국내에서 수질정화는 물론이고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붙잡고 바이오연료까지 생산하는 습지 개발이 시작됐다./연세대 강호정 제공 ◆이이제이(以夷制夷)로 메탄 발생 억제
연세대 강호정, 서울대 김재근 교수와 일송환경의 김용규 박사 연구진은 지난해부터 환경부 산하 에코스타(EcoSTAR) 수생태복원 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이산화탄소를 붙잡고 바이오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습지 건설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진은 2014년까지 4대강 정비사업으로 건설될 인공 습지에 이 기술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연구진은 울창한 숲보다 습지가 이산화탄소를 붙잡는 능력이 뛰어난 데 주목했다. 매년 식물이 광합성으로 붙잡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따져봤더니 온대의 울창한 숲은 1년에 1 ㎡당 약 700g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했다. 이에 비해 습지는 1000g이 넘는 지역이 많았다. 특히 바닷가에 있는 습지 중에는 2000g이 넘는 곳도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 호아퀸(San Joaquin)강 삼각주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연평균 3000g의 이산화탄소가 제거됐다.
하지만 습지에서는 퇴적된 유기물이 썩으면서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효과가 21배나 되는 메탄가스가 발생한다. 이산화탄소를 잡기 위해 만드는 습지가 오히려 메탄의 발생을 증가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메탄 발생을 줄이기 위한 방법도 여러 가지 모색되고 있다. 먼저 습지에서 메탄을 생성하는 미생물을 다른 미생물로 억제하는 방법이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르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이다.
미국의 산 호아퀸에 복원된 습지는 다른 습지와 달리 메탄 발생량이 크게 줄었다. 바로 황산환원세균 때문이다. 산 호아퀸 습지는 바다에 가까이 있어 물속에 황산염이 많다. 덕분에 황산을 이용하는 세균이 먹이를 독차지해 메탄생성세균의 활동을 억제한다. 강호정 교수는 "4대강 정비 때는 강 바닥에서 파낸 진흙을 배후 습지에 뿌릴 계획인데 이때 황산염을 같이 뿌리면 메탄생성세균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폐광산에서 나온 황산염 함유 광물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황산염이 오랜 시간 동안 일정한 양으로 배출되게 하는 기술이 선결과제다.
또 다른 방법은 시베리아의 습지를 모방하는 것이다. 고위도 지방의 춥고 습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이탄(泥炭)습지도 메탄 발생이 적다. 이곳에서는 식물이 죽더라도 잘 썩지 않고 석탄과 비슷한 이탄 상태로 쌓여 있다. 국내에서도 메탄 발생이 적은 이탄 토양 위에 갈대가 빠른 속도로 자라는 독특한 습지가 오대산에서 발견된 바 있다.
영국 웨일스대학의 크리스 프리만(Freeman) 교수는 이탄습지에서 유기물이 잘 분해되지 않는 데에는 페놀릭(phenolic)이라는 물질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만일 이탄습지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다른 종류의 습지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식물은 빨리 자라고 식물 사체는 분해되지 않고 축적되는 이상적인 습지를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강 교수팀은 이 연구도 시작했다.
◆바이오연료원으로도 각광
습지는 친환경 바이오연료도 만들 수 있다. 지난 3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진은 축산폐수를 인공습지에 집어넣고 습지식물인 개구리밥을 키우면 폐수정화는 물론이고 바이오연료까지 얻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폐수를 먹고 자라난 개구리밥은 단위 면적당 전분 생산량이 옥수수의 6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분은 바이오연료인 에탄올을 만들 수 있다. 국내에서도 한경대 연구진이 습지식물인 부들을 이용해 바이오에탄올을 생성하는 공정을 개발한 데 이어, 상용화를 위해 미국 노스다코타주의 제주도 1.3배 넓이(24만1322㏊) 부들 군락지 독점 사용권도 획득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정비 사업에는 다양한 습지복원 계획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 수질개선이나 홍수로 넘치는 물을 일시 저장하는 목적에 그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온난화기체 저감을 위한 습지 건설 기술은 아직 보고된 바가 없으며 관련 특허도 없다.
강 교수는 "이산화탄소를 고정하고 메탄을 배출하지 않는 습지를 개발하면 기존의 목적에 덧붙여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새로운 녹색 성장 기술로 사용할 수 있다"며 "국내 개발 기술을 동남아시아 등에서 습지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데 활용하면 탄소배출권을 획득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