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7 <매일경제>
지난 2003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발견된 1만8천년 전의 왜소한 인류 화석은 현생인류와는 다른,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이라는 두 개의 연구가 네이처 지에 동시에 발표됐다고 BBC 뉴스와 AFP 통신이 보도했다. 플로레스 섬의 리앙 부아 동굴에서 발견돼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로 명명된 이들은 어른의 키가 90㎝, 몸무게는 30㎏에 불과했지만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냥을 하면서 이 섬에서 8천년 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왜소 종족의 이름을 따 `호빗'으로 불리는 이들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의 자손인 원시 인류가 섬에 고립돼 수천년 동안 자연선택에 의한 이른바 `격리 왜소화'를 일으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들의 뇌 회백질 부피가 현생인류의 3분의1인 400㎤도 안 돼 침팬지 수준이라는 점을 들어 갑상선 결함으로 왜소증을 일으키는 유전질환인 크레틴병에 걸린 현생인류라고 주장해 왔다.
미국 스토니 브룩스 대학 연구팀은 이들의 발 뼈를 분석한 결과 믿을 수 없을만큼 현생인류와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의 엄지발가락은 다른 발가락들과 평행을 이루고 있으며 관절들은 온 체중이 발에 실릴 때 발가락들이 늘어날 수 있는 구조로 밝혀졌는데 이는 다른 영장류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 점만 제외한다면 이들의 발은 매우 원시적이어서 현생인류의 발보다 훨씬 길며 엄지발가락은 매우 작고 다른 발가락들은 길고 구부러진데다 침팬지처럼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구조로 드러났다.
한편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현생인류의 발은 150만년 전 이전에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진화했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연구진은 호빗족이 이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인류의 진화 계보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이 더 원시적으로 역진화했다는 추측 밖에는 할 수 없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조상이 호모 에렉투스가 아닌, 보다 원시적인 호미닌(인류와 침팬지를 합친 집단)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이런 호미닌이 동남아 일대에 퍼져 살았다는 기록은 아직까지 나온 바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네이처 지에 함께 실린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의 연구는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발견된 하마의 두개골을 이들의 조상인 본토 하마들의 것과 비교한 결과 섬에 격리된 하마들의 두개골이 예상 가능한 범위보다 훨씬 심하게 축소됐음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을 호빗족에게 적용한다면 이들도 유전질환을 가진 현생인류 개체, 또는 개별적으로 진화해 온 종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섬에 살며 왜소해진 호모 에렉투스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두 연구에 대해 하버드대학의 대니얼 리버맨 교수는 "의문에 일부 답을 주지만 새로운 의문을 일으키는 연구"라고 논평했다.
그는 더 많은 화석 증거가 나와야만 호빗족이 유라시아 전역에 흔적을 남긴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진화했는지, 아니면 아직까지 아프리카 바깥에서 흔적이 발견된 적이 없는 보다 오래 전의 계보로부터 진화했는 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면서 어느 경우든 호빗족이 크레틴 병에 걸린 현생인류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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