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23 <joins>
휴가철, 베이징 여행 한 번 더하시죠. 이번에는 베이징 원인(猿人)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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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중의 하나가 ‘베이징 원인’이다. 고등학교 세계사 과목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 시간에 꼭 배우게 된다.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자바인 등과 함께 나온다. 지금도 교과서에 나오는 베이징원인의 삽화가 아물아물 기억난다.
베이징에서 서남쪽으로 약 2시간 달려 도착한 곳 저우코우디엔(周口店). 바로 베이징 원인이 발견된 곳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 있어 푸근했고, 앞에는 시냇물이 흘렀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산은 따듯한 햇빛을 받아들이고 있다.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인류 조상들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저 시냇물에 물도 많이 흘렀겠고, 지금보다 더 비도 많이 왔을 테고, 주변에는 물고기와 동물 등 사냥감이 많았겠지….
191 8년 3월 22일.
이 저우코우디엔에 푸른 눈의 낮선 외국인 한 명이 찾아온다. 그는 누구 길래 당시 아무런 주목을 받지 않았던 이 곳에 찾아왔을까.
스웨덴의 고고학자인 안데르손(1 874~1960)이었다. 중국 고고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당시 나이 44세였던 그는 중국에 호기심이 많은 학자였다. 자신의 고고학 학문을 중국에서 꽃피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중국에 왔다.
그는 전날 연경(燕京)대학 멕그리거 깁 교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깁 교수는 안데르손을 보자 품에서 진흙이 묻어있는 부서진 뼈 조각을 꺼냈다.
“저우코우디엔이라는 곳에서 발견된 것들입니다. 그곳에는 이런 뼈 조각이 많답니다.”
안데르손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그렇게 찾고 있었던 용골(龍骨)이 여기에 있었다니…. 당시 한약재로 쓰이던 용골에 무엇인가 고고학적 비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날이 밝자마자 그는 저우코 우디엔을 찾은 것이다.
그게 시작이었다. 안데르손의 방문은 50만년 인류 조상의 수수께끼를 푸는 거대한 고고학적 발견의 첫 걸음이었다. 그러나 그 날은 빨리 오지 않았다. 50만년의 세월을 동굴 속에 있었던 인류의 조상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루쉰(魯迅)의 ‘중국소설사략’ 강의 시간이면 누구보다 먼저 와 교실 앞자리에 앉는 청년이 있었다. 이름은 바이중원(裴中文). 지질학과 학생이었다. 그는 지질학을 공부하면서도 소설을 쓰는 등 문학적 소질이 있었다. 학생운동을 이끌었고, 시위를 주동하기도 했다. 루쉰은 이런 그를 끔찍이 아꼈다. 루쉰은 바이원중이 작가의 길을 걷기를 바랬다.
그러나 바이원중은 루쉰을 등졌다. 그는 자신의 길, 고고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1927년 베이징대학을 졸업한 그는 저우코우디엔 원인 발굴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는 발굴 작업의 성과가 없어 모두 떠나려고 하던 참이었다. 바이원중은 발굴을 책임지게 됐다. 그의 나이 23세였다.
1929년 12월 2일 오후 4시.
발굴현장에는 눈이 오고 있었다. 모두들 지친 몸이었다. 엇인가라도 하나 더 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기계적인 발굴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바로 그대 한 대원이 소리친다.
“여기 이상한 구멍이 있습니다”
그들은 50만 년 전 인류의 생활공간으로 가는 문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번역 소개된 책 ‘주구점의 베이징인(일빛출판사, 웨난/리밍셩 지음)’은 당시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바이원중은 천천히 동굴로 들어갔다. 음산한 분위기가 그를 감쌌다. 촛불이 떨렸다. 그는 주위를 돌아봤다. 감짝 놀랐다. 동굴 밑바닥에 아주 먼 옛날의 동물 화석이 반듯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
흔들거리는 촛불 아래 동굴 밑바닥이 흐릿하게 밝아지며 약간 툭 튀어나온 것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 머리 같은데!”
바이원중은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그는 주의 깊게 살펴봤다. 그는 돌연 놀람과 기쁨이 교차하는 듯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틀림없어 이건 분명 사람의 두개골이야”
50만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숨어있던 인류의 조상이 마침내 그들의 자손에게 처음으로 존엄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베이징 원인 두개골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두개골은 발굴 후 미국 통제 하에 있던 베이징 협화의학원에 보관되어 있었다. 당시는 일본의 중국 침략이 더욱 노골화된 때라 그 곳이 가장 안전한 지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은 진주만 사건 발생 직전 두개골을 더욱 안전한 미국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를 미국 해병대가 인수했고, 미 해병대는 우편선 해리슨 프레지던트 호에 실어 운송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이 터지게 됐고, 그 와중에 베이징 원인을 잃어버렸다.
베이징원인의 두개골은 아직도 실종상태다. 일본에 있다는 설, 미국이 갖고 있다는 설, 베이징 어딘가에 묻혀있다는 설, 바다 속으로 빠졌다는 설 등 '썰'만 무성하다. 중국정부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행적을 찾을 수 없다. 인류의 조상을 잃어버린 것이다.
‘주구점의 베이징인’의 저자인 리밍셩(李明生)은 베이징원인 두개골을 읽어버린 직접적인 당사자는 미국이지만 그 원인은 중국의 나약함에 있다고 한탄한다. 두개골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어 해외로 보내야 했던 무능력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중국은 외국의 강탈을 막을 힘도 없었고, 베이징 원인을 보호할 능력도 없었다.
나라의 무력함이 수 만년 조상의 혼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우덕 기자 [
woody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