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황금광시대]다시 불붙은 ‘골드러시’… 금광 탐사 열기 ‘후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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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황금광시대]다시 불붙은 ‘골드러시’… 금광 탐사 열기 ‘후끈’

CHRIS 0 6,373 2008.08.12 13:05
[한경비지니스 2008년 8월 12일 화요일]

새로운 골드러시다. 국제 금값이 급등하면서 노다지의 꿈이 되살아나고 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 땅을 뒤흔들었던 금광 열풍 이후 처음이다. 경제성이 낮아 문을 닫았던 폐광에 다시 탐사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대대적인 재개발 논의가 무성하다. 첨단 기술과 자금력을 앞세우지만 이들의 가장 큰 무기는 노다지에 대한 확신과 뜨거운 열정이다.

“삼일 전 밭에서 주운 돌입니다. 물기가 없을 때는 광채가 거의 없는데 물을 묻히면 광택이 나네요. 혹시 이런 금도 있나요.”(yhn78kr). “뭔가 있는 듯합니다. 검은 부분을 20배율 정도로 볼 수만 있다면….”(금빛나래). “사진으로 보기엔 그냥 규암이 되면서 불순물이 들어가 색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배우는이).

네이버에 개설된 인터넷 카페 ‘금(GOLD) 직접 캐보자’에 올라오는 글에서는 남다른 열정과 흥분이 느껴진다.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금맥 찾기와 관계된 내용들이니 그럴만도 하다. 금을 함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암석 사진이 거의 매일 카페에 올라온다. 그러면 회원들이 전문가 수준의 분석과 조언을 해준다.

카페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공동 탐사에 나서기도 한다. 지난 4월에는 강원도 화천 지역의 폐광을 함께 둘러봤다. 직접 광산 터널에 들어가 말로만 듣던 석영맥을 눈으로 확인하고 인근 강가의 모래를 파 사금을 채취해 보는 체험 행사도 가졌다.

‘내 손으로 금 캐자’…인터넷 카페 인기

지난 2004년 개설된 이 카페는 최근 회원 수가 3000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초만 해도 1000명 수준이던 것이 불과 1년 반 만에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가입한 직장인에서부터 전직 광산 기술자까지 출신 배경은 다양하지만 “내 손으로 금을 캐보겠다”는 뜨거운 열의는 마찬가지다.

다시 시작된 골드러시는 최근 광업권 출원이 크게 증가한데서도 확인된다. 2006년 483건이던 ‘금 은 동 납 아연’의 광업권 출원 건수는 2007년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1619건을 기록했다. 지식경제부 광업등록사무소 심사팀 정상봉 씨는 “광업권 출원 건수가 500건을 넘어선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국제 원자재 값 폭등으로 금속광물의 채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광업권은 큰돈 들이지 않고 누구나 등록할 수 있다. 금광이 맨손으로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할 수단이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땅속에 묻힌 광물에 대한 권리는 토지 소유권과는 별개다. 우리나라는 66개 광종에 대해 광업권을 인정하고 있다. 광업권 등록을 신청해 허가를 받으면 땅주인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더구나 광업권을 출원하는데 탐사비, 등록세 등을 모두 포함해 150만~200만 원이면 충분하다. 물론 광업권을 받은 후 2년 이내에 개발하지 않으면 권리는 자동 소멸되고 개발 후에는 매년 일정 기준의 생산 실적을 내야만 광업권이 유지된다. 또 실제 광산 개발까지는 상당한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금이 묻혀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이런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금(GOLD) 직접 캐보자’ 회원인 김승기(53·아이디 새벽마을) 씨도 지난해 광업권을 한 곳 등록했다. 강원도 고성에서 금은방을 하고 있는 김 씨는 작년 여름 우연히 카페에 가입하면서 금 찾기에 빠져들었다. 김 씨는 “금은방을 하다 보니 국제 금값 동향에 민감하다”며 “작년부터 주말마다 인근 폐광들을 훑고 다니다 보니 실력이 늘고 자신감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주중에는 금 관련 논문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국회도서관을 오가며 그동안 읽은 논문이 200~300편 정도 된다.

김 씨는 작년 광업권을 취득한 곳에 내심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그는 “폭 1m나 되는 석영맥이 황홀하게 올라가 직접 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란다”며 “보통 금광은 석영맥이 30~50cm 정도고 충북 음성의 유명한 광산인 무극광산이 1m였다”고 말한다. 올 가을 첫 단계로 주변 지역을 ‘트렌치(구멍을 파는 것)’해 볼 계획이다. 김 씨는 “마음에 드는 곳 중 아직 등록하지 않은 곳이 두 군데 더 있다”고 귀띔한다.

물론 ‘누구나 금맥을 찾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아직 일반인들에게 그다지 현실성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과연 한국에 그만한 금이 묻혀 있느냐에 의문을 제기한다. ‘자원 빈국’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에 익숙한데다 캘만한 건 이미 다 캤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더해진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의 ‘자박마니(금을 캐는 사람을 뜻하는 순우리말)’들은 한반도에 엄청난 금맥이 숨어 있다는 철석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

세계 3대 금광으로 꼽혔던 운산광산

지금은 생소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게도 ‘엘도라도의 시대’가 있었다. 1896년 미국인 모스가 대한제국 황실로부터 채굴권을 얻어 개발한 평안북도 운산광산은 ‘세계 3대 금광’으로 불리던 노다지 광산이었다. 1939년 일본인에게 운영권을 넘길 때까지 40년간 운산광산에서 채굴된 금은 모두 80여 톤에 달했다. 톤당 240억 원인 최근 금 시세를 적용해 단순 계산해도 1조9200억 원어치가 된다.

1930년대에는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를 연상케 하는 금광 열풍이 식민지 조선을 강타했다. 조선총독부가 유망한 금광에 탐광 보조비를 지급하는 등 대대적인 산금장려정책을 편 결과였다. 당시 일본은 세계적인 금값 폭등과 환율 붕괴로 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금을 캐려는 망치질과 삽질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조선 제일의 금광왕으로 불린 최창학과 교동금광으로 큰돈을 벌어 조선일보사를 인수한 방응모가 이 시대 모두가 꿈꾸던 성공 모델이었다.

그러나 소설가 김기진 채만식 김유정 등 당대 지식인들까지 펜을 버리고 곡괭이를 들게 했던 골드러시는 불과 10년 만에 막을 내렸다.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수백 개의 광산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광복 후 이 중 몇 곳에선 생산이 재개됐지만 대다수는 손도 대지 못했다. 네이버에서 또 다른 금 관련 카페 ‘금광개발 컨설팅’을 운영하는 권용일 씨는 “신생국 대한민국은 금광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자본과 고도의 기술, 수요처 등 모든 것이 부족했다”고 설명한다. 광복 이후 금광업은 사실상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국내 최대 금광으로 유지되던 충북 음성의 무극광산마저 금값 폭락에 따른 채산성 부족으로 1997년 문을 닫고 말았다.

권 씨는 노다지의 단서를 찾기 위해 방대한 일제시대 광산 자료와 씨름하고 있다. 그는 “광산은 한반 개발하면 대개 수십 년, 긴 곳은 백 년 이상 광물이 나온다”며 “1930년대 그 많던 금광이 불과 10년 만에 문을 닫은 건 결코 금이 바닥났기 때문이 아니다”고 힘주어 말한다. 권 씨는 흉물로 남아 있는 일제시대 폐광 중 적지 않은 곳에 엄청난 금맥이 묻혀 있다고 믿고 있다.

금광 개발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채산성이다. 힘들여 캐낸 금을 팔아 최소한 생산비 이상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금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광물이다. 다만 미량이라 개발 가치가 없을 뿐이다. 물론 실제 금광 개발에 나서려면 훨씬 다양한 요인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서울 마포대교 북단 불교방송 뒤쪽에는 ‘쌍용황금아파트’라는 특이한 이름의 소규모 단지가 눈에 띈다.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망채산 지역으로 과거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아파트 이름에 ‘황금’이 들어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아파트 밑으로 금맥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98년 초 이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에서 처음 금이 발견됐다. 톤당 금 함유량이 14.5g으로 경제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가 나왔지만 본격적으로 개발되지는 못했다. 땅 소유자인 재건축조합 측이 입주 예정일이 이미 정해져 있어 공사를 지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본격적인 매장량 측정과 광산 개발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인근에 있는 시티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금맥이 지나 수맥 차단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난 때문에 지금도 일부러 찾아오는 고객이 가끔 있다”고 말한다.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아온 골드러시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국제 금값이 크게 오르면서 금광 탐사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트로이 온스당(1트로이 온스=31.1g) 282달러이던 금값이 올 초 971달러로 3배 이상 뛰었다. 최근에는 900달러대에서 조정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금값 추가 상승을 점치고 있다. 중국 인도 등 신흥 강국들이 막대한 외환 보유액을 미국 달러화에서 금으로 바꾸는 상황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그럴 경우 금값의 수직 상승이 예상된다.

최근 정부도 대대적인 금광 재탐사 및 재개발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 그동안 방치됐던 1884개 기존 광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거쳐 유망 지역 8곳을 추려냈다. 대한광업진흥공사는 2020년까지 이들 지역에 대한 정밀 재탐사와 재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손길상 대한광업진흥공사 탐사사업팀장은 “금은 금속광물 중 탐사가 가장 까다로운 광종”이라며 “기존의 석영맥 위주의 접근에서 벗어나는 탐사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금은 주로 석영맥 속에 작은 알갱이 형태로 발견돼 왔다. 금덩이가 금방 눈에 띌 정도의 형태로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 보통 금광석 1톤에서 금 5g 이상을 뽑아낼 수 있으면 광산으로 개발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됐다. 문제는 금맥의 흐름이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석탄이나 다른 광물들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데 금은 맥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장담하기 어렵다.

손 팀장은 “광물은 모암(母巖)을 중심으로 여러 광종이 조합 형태로 존재해 이를 잘 모델링하면 의외로 쉽게 금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아연과 납, 동이 있으면 금이 따라 나오게 돼 있다는 것이다. 금과 은, 동도 일종의 공생 광물군이다. 손 팀장은 “예전에는 광산 한곳에서 하나의 광물만 캐내면 끝났지만 이제는 거기에 수반되는 유용한 광물을 찾아 모두 뽑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외국 업체들 한국 금광 개발 눈독

최근 투자 설명회를 연 강원도 삼척 가곡 아연광산이 대표적인 사례다. 광진공은 1986년 문을 닫은 이곳을 재개발하면서 금은 물론 은 텅스텐 몰리브덴 등을 함께 탐사, 개발할 예정이다. 과거에는 아연 이외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던 광산이다. 폐광 재개발은 단순히 기존 광산을 재가동한다는 차원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금광 탐사에서 한발 앞서 있는 곳은 놀랍게도 외국 업체들이다. 캐나다의 광산 업체 아이반호는 지난 1995년 금맥을 찾기 위해 일치감치 우리나라 전역을 항공 촬영했다. 이를 토대로 개발한 곳이 바로 해남 은산광산이다. 2000년 시추 결과 500억 원대의 금과 은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판명됐고 2002년부터 본격적인 채광이 시작됐다. 현재 은산광산은 2004년 아이반호로부터 광산권을 인수한 순신개발이라는 국내 업체가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캐낸 금은 모두 150.2kg이었는데 이 중 146.4kg이 은산광산에서 나왔다. 1997년 무극광산 폐광으로 끊어진 국내 금광의 맥을 은산광산이 잇고 있는 셈이다.

최근 예사롭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곳은 캐나다의 다국적 광물 탐사 및 광산 개발 회사인 오리엔탈미네랄즈다. 이 업체는 지난 2006년 현지법인을 설립해 처음 국내에 진출한 이후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오리엔탈미네랄즈가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는 광업권은 전남 가사도광산 4개, 충북 무극광산 5개, 강원 상동광산 23개, 충남 청양광산 4개 등 모두 461개에 달한다. 이 중 금 은에 대한 광업권이 41개다. 오리엔탈미네랄즈는 한국 내 광산 개발을 위해 오는 2010년까지 5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그동안 금은 귀금속용으로 주로 쓰이는 사치품이란 인식 때문에 전략 광물에서 제외돼 왔다. 하지만 컴퓨터,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에 필수적인 산업용 금 수요가 만만치 않은 비중으로 늘어나고 있다. 손 팀장은 “국내 금 수요는 연간 108톤에 달한다”며 “수입 대체를 위해서도 금광 개발에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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