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석유시장의 새 '일곱 자매' 파워;'서방 7대 메이저' 지고 산유국 국영기업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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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석유시장의 새 '일곱 자매' 파워;'서방 7대 메이저' 지고 산유국 국영기업 시대로

CHRIS 0 7,770 2008.09.11 12:35
[위클리조선 2008년 9월 11일 목요일]

‘일곱 자매들(Seven Sisters)’. 이탈리아 국영 에너지회사 ENI의 초대 총재인 엔리코 마테이(1906~1962)가 미국과 영국의 7대 석유 회사에 붙인 별명이다. 국제 석유 시장에선 이들을 ‘석유 메이저(Major)’라고 부른다. 일곱 자매들은 그동안 국제 유가를 좌지우지하는 등 강력한 힘을 발휘해왔다.

로열더치셸·엑슨 등 서방 메이저 수십 년 카르텔
원조 ‘일곱 자매’가 국제유가 좌지우지

최초의 국제 석유 카르텔은 1928년 영국의 앵글로페르시아(BP의 전신)와 로열더치셸, 미국 뉴저지의 스탠더드석유회사(엑슨의 전신)가 서남아시아의 석유 이권에 관한 아크나카리 협정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이들 3개 회사는 스코틀랜드성 아크나카리에 모여 국제 석유시장을 독식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자 뉴욕 스탠더드석유회사(모빌의 전신), 캘리포니아 스탠더드석유회사(셰브론의 전신), 걸프석유회사, 텍사코 등 4개 미국 석유회사가 3개 회사에 추가되면서 일곱 자매들은 국제 석유 시장에서 막강한 카르텔을 구축했다. 세븐 시스터스는 전세계 석유 채굴과 정유, 판매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했다.

국제 석유시장의 또 다른 카르텔은 비서방 산유국들의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OPEC)다. OPEC 산유국들은 제 1·2차 오일쇼크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이 때문에 OPEC은 한때 세븐 시스터스에 맞서는 세력으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세븐 시스터스는 OPEC에 대한 로비와 적절한 수익 배분 등을 통해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영향력을 유지했다. 서방 메이저와 OPEC 산유국들 간의 계약에서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는 중요한 원칙인 ‘시장에 판매되는 가격과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은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1970년대 서방 메이저들의 석유 생산량은 전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세븐 시스터스는 인수와 합병을 통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쏟아왔다. 엑슨은 모빌과 합병하고, 걸프석유회사는 셰브론과 BP로 나뉘어 흡수되었으며, 텍사코는 셰브론과 합쳐졌다. 세븐 시스터스는 현재 엑슨모빌, BP, 로열더치셸, 셰브론 넷만 남았다.

서방 메이저 원유생산량 하루 61만배럴씩 감소
시장점유율도 1970년대 50%에서 13%로 하락

지난 50여년 간 국제 석유시장을 주물렀던 이들 4개사를 포함해 미국의 코노코필립스, 프랑스의 토탈 등 서방메이저들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실제로 올 초의 유가 폭등으로 서방 메이저들은 큰 폭의 이익을 실현했지만 원유 생산량은 감소하고 있다. 엑슨모빌 등 5대 서방 메이저들은 지난 2·4분기간 440억달러의 이익을 냈지만 하루 원유생산량은 61만4000배럴씩 감소했다. 이는 지난 15개월 간 계속돼 온 원유생산 감소량 중 최대치다. 이 정도 양은 하루 8600만배럴의 원유를 소비하는 세계시장에서 극히 미미하다고 볼 수 있지만, 생산량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2003년 이후 생산량도 하루 1000만배럴 수준으로 정체 상태다. 5대 서방 메이저들의 시장 점유율도 1970년대 말 50% 수준에서 최근 13%로 크게 떨어졌다.

서방 메이저들이 쇠락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거세게 불고 있는 자원민족주의 때문이다. 서방 메이저들은 중앙아시아·남미·러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새로운 유전 개발 사업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다. 주요 산유국들은 서방 메이저들이 누려왔던 유전 개발권을 자국의 국영 석유기업에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서방 메이저들은 이전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으로 재계약을 강요받거나 해당 지역의 국영석유회사들과의 경쟁에서 배제되고 있다. 러시아·알제리·나이지리아·앙골라 등에 진출한 서방 메이저들은 최근 해당 국가 정부와 재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과거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에너지 분석가 아르잔 무르티는 “지구상에는 지질학적(geological)으로 베네수엘라·러시아·이란·이라크 등 아직도 원유를 뽑아 올릴 유전이 수없이 많다”면서 “그러나 정치가 개입돼 지정학적(geopolitical) 차원에서 서방 메이저들이 더 이상 개발할 유전이 많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석유 생산이 정점에 달했다는 ‘오일 피크(oil peak)’ 이론이 오류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구상에 원유는 고갈되고 있지 않다”면서 “선진적인 시추 경험과 생산 노하우가 있는 서방 메이저들이 원유를 시추할 유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7개 국영기업, 세계 매장량의 3분의 1 보유
“향후 40년 세계 에너지의 90% 공급” 예상

서방 메이저들이 힘을 잃으면서 세계 석유 생산의 지배권은 산유국의 국영석유기업들에 넘어가고 있다. 이른바 새로운 국제 석유 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서방 석유메이저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면서 “석유 패권이 서방 메이저들에서 산유국의 국영에너지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8월 19일자) 미국 서던메서디스트대학 에너지연구소 브루스 불럭 소장은 “우리는 미래의 석유 공급을 베네수엘라·나이지리아·이란의 국영석유회사에 맡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석유시장에서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는 국영에너지기업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러시아의 가즈프롬, 이란의 국영석유공사(NIOC), 중국의 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 브라질 국영석유가스회사 페트로브라스, 말레이시아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나스 등이다. 이들은 국제 석유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새로운 일곱 자매(New Seven Sisters)’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들 7개 국영에너지기업의 생산량은 전세계 석유 및 가스 생산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보유 매장량도 전세계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국영석유기업인 아람코는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람코는 현재 하루 원유 생산 능력이 1500만배럴이나 된다. 가즈프롬과 CNPC는 지난해 말 기준 시가총액에서 BP와 셸을 밀어내고 세계에서 2·3위 자리를 차지했다. 가즈프롬은 시베리아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독점적으로 해외에 공급하고 있다. 가즈프롬의 공급 여부에 따라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CNPC도 중동과 중앙아는 물론 아프리카와 남미를 싹쓸이하면서 자국에 필요한 석유를 모으는 역할을 맡고 있다. 페트로브라스도 최근 잇달아 자국 연안에서 해저유전을 발견, 상종가를 치고 있다. 페트로브라스는 앙골라와 멕시코만 유전 개발에서도 BP·엑슨모빌과 경쟁하고 있다. 페트로나스는 서방 기업들이 인권 문제로 투자하지 못하는 수단과 미안먀를 비롯한 26개국에서 50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해외에서 30%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일부에선 이 7개 기업들이 앞으로 40년간 전세계 에너지의 90%를 공급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풍부한 자금 업고 반(反)서방국들 공략나서
서방 메이저들과의 기술력 차이도 급격히 좁혀

새로운 일곱 자매들은 물론 다른 산유국의 국영에너지기업들은 영향력을 보다 확대하기 위해 상호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컨설팅업체인 PFC에너지에 따르면 2000년에 2건뿐이던 국영에너지기업 간 제휴가 2006년에는 16건으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도 CNPC와 NIOC가 이란 야다바란 유전 개발을 위해 20억달러의 투자협정을 맺었고, 인도 석유천연가스공사와 알제리의 국영 소나트라크사도 리비아 유전 공동 탐사에 들어갔다. 러시아의 가즈프롬과 노르웨이의 스타토일하이드로도 바렌츠해 가스 개발을 위한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처럼 서로 손을 잡고 새로운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 추정 지역에서 탐사와 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 또 이들은 상호간 기술협력과 공동투자 등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국영에너지기업의 강점은 무엇보다 국가가 뒷받침하는 풍부한 자금력이다. 파격적 제안으로 서방 메이저 기업과의 계약을 대체할 정도로 물량공세에 적극적이다. 규모 면에서 에너지 부문 세계 상위 20개 중 14개가 국영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국가적 차원의 정치적 동맹이나 연대에 따라 서로 제휴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중국이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 조치에 맞서 이란의 유전과 가스전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양국이 개발에 합의한 야다바란 유전은 확인 매장량이 183억배럴이고, 가스 매장량은 3540억㎥에 이른다. 골람 호세인 노자리 이란 석유부 장관이 “이란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국가나 기업은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라며 “앞으로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중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 허용은 투자를 전면 거부하고 있는 서방 메이저들에 대한 이란 정부의 보복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반미의 기수를 자처하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오리노코강 유역 등 새로운 유전 개발 사업에서 서방 메이저들을 배제하고, 중국과 이란 등 우방국가의 국영 기업들과 협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방 메이저들은 이미 베네수엘라 정부가 주요 원유시설을 국영화하자,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철수하거나 유전 관리권을 넘겨 버렸다.

일부 국영에너지기업의 경우 서방 메이저들과의 기술적 격차도 그다지 크지 않다. 페트로브라스는 심해 석유 탐사 부문에서, 스타토일하이드로는 북극해 연안 사업과 해저 생산 기술에서 선두주자다. 자금이 풍부한 중국이나 러시아, 기술 수준이 높은 노르웨이, 풍부한 자원이 있는 아프리카나 중동의 국영에너지기업들이 연대를 맺게 되면 ‘자금·기술·자원’이라는 이상적인 조합이 이뤄질 수도 있다. PFC에너지의 로빈 웨스트 회장은 “이들이 국제시장에서 새 규칙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으며 다른 기업들은 이 규칙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 국영에너지기업이 새 국제석유 질서를 구축하고 있는 데 따른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들은 국영기업인 만큼 자국 정부의 정치적 노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외교적 논리에 따라 공급을 중단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칫하면 에너지를 무기화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이들이 고유가에 따른 이익을 새 유전이나 가스전 개발에 재투자하지 않고 자국의 사회간접자본 등 국가적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장기적으로 석유 공급에 차질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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