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앞바다에 배 삼키는 블랙홀?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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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9 09:56
[조선일보 2009년 2월 5일 목요일]
"해저 메탄가스층 분출로 거대 기포에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는 잇단 실종에 해양硏 연구팀 새 가설
울산 앞바다에도 선박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마(魔)의 해역'이 있는 것일까. 최근 울산 앞바다에서 수차례 발생한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선박 실종 사고'가 바다 밑에서 솟구친 메탄가스 탓에 선박이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갔기 때문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위성관측기술연구부 정갑식(52) 박사는 지난달 30일 울산 앞바다에서 선원 9명을 태운 채 실종된 뒤 엿새째 행방이 묘연한 오징어잡이 영진호(59t급) 조난사고에 대해 4일 "해저(海底) 메탄가스에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바다 속 메탄가스층의 거대한 가스 덩어리가 해저 지각 틈새를 뚫고 수면까지 치솟으면서 배 밑의 물을 밀어내버려 배가 순간적으로 물에 의한 부력(浮力)을 상실해 가스 덩어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침몰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픽〉
이 같은 현상은 해저의 약한 지진이나 소규모 단층활동 등으로 메탄가스층에 균열이 생기면서 주로 발생한다. 이렇게 분출된 가스 덩어리는 지름이 수백m에 달하기도 해, 선체 길이가 수백m인 항공모함도 단숨에 삼키거나 중소형 선박 여러 척을 한꺼번에 침몰시켜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정 박사는 "메탄층이 두꺼운 미국 인근 버뮤다 해역의 잇단 선박 실종사건이 대표적 유형"이라고 했다. 또 "최근 유럽 북해에서는 바다 밑 메탄가스 분출구에서 침몰 선박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메탄가스 덩어리가 분출구에서 수면까지 하나의 거대한 기둥으로 솟구쳤기 때문에 배가 분출구까지 바로 빨려 들어간 것으로 추정됐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의 이 같은 문제제기는 영진호가 사라진 울산 방어진항 동쪽 54㎞ 지점과 인접한 해역에 국내 대표적 메탄가스층이 존재해 더욱 주목된다. 한국석유공사는 이 해역 가운데 울산 동남쪽 58㎞ 지점에 '동해-1 가스전'(채굴 가능량 500만t 추정)을 세워 주성분이 메탄가스인 LNG(액화천연가스)를 하루 1000t씩 뽑아 올리고 있다. 영진호가 "귀항 중"이라는 마지막 교신을 끝으로 감쪽같이 사라진 점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 박사는 "국내엔 울산 앞바다, 제주 마라도 해역, 포항~울릉도 사이 울릉분지 등 3곳에 대규모 메탄가스층이 분포해 있고, 이번과 유사한 침몰사고가 여러 번 있었다"며 "메탄가스와의 연관성을 정밀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 해역 주변에서는 영진호 외에도 최근 4년 사이 최소 2건 이상의 유사 침몰사고가 있었다. 2005년 1월 방어진 동쪽 60㎞ 해상에서 51t급 트롤어선 대현호가 갑작스러운 큰 파도로 침몰해 선체와 함께 선원 10명 중 7명이 실종됐다. 영진호 사고 해역과 6㎞ 떨어진 곳이다. 작년 11월에도 영진호 사고 해역에서 북쪽으로 6㎞쯤 떨어진 경주시 감포항 동방 54㎞ 해상에서 79t급 통발어선 115한일호가 갑자기 거세진 파도에 전복돼 선원 10명 가운데 7명이 실종됐고, 선체도 사라졌다.